핀란드가 작년 1월부터 진행한 기본소득 실험을 올해 말 종료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재작년 스위스가 기본소득 지급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했을 때 설치한 홍보 포스터.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핀란드 정부는 지난 2017년 1월부터 25세부터 28세까지의 실업자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매달 560유로(약 680달러·73만5,000원)를 지급해왔다. 이를 위해 책정된 예산은 약 2,000만유로. 국가가 기본소득제도를 직접 실행하고 그 효과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실험이다.

사회빈곤층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 중 가장 파격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 기본소득제도는 최근 북유럽·북아메리카의 선진국들이 도입 움직임을 보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향후 인공지능 시대의 본격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무조건성과 보편성을 강조한 기본소득제도의 중요성도 더 높아졌다. 다만 재원마련에 대한 우려는 기본소득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 ‘연내 실험 종료’가 ‘기본소득의 실패’ 의미하는 것은 아냐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은 24일(현지시각) 이 기본소득제도의 실험기간을 연장할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해당 제도는 올해 12월 말에 종료된다. 다만 국내외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번 발표를 기본소득제도의 실패, 나아가 사회복지제도의 실패로 간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우선 “실험 종료는 당초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사회보장국 관계자의 말처럼,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예정된 노선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실험 시작 당시부터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 지급기간을 2017년 1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로 명시했다. ‘중도 중단’과 ‘연장 거부’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번 실험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섣부른 판단을 자제해야 하는 요인이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어떤 결과를 도출했는지 알고 싶다면 우선 올해가 지나 실험이 종료되고, 이후 정부가 사후평가를 마무리한 후 관련 보고서를 공개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기본소득을 기존 사회복지제도의 문제점들(노동자의 근로의욕 감퇴나 실업수당에 대한 높은 의존도 등)과 동일선상에서 생각하려는 시도도 기본소득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본소득은 실업수당과 다르게 수급자가 직업을 얻어도 지원이 중단되지 않는다. 기본소득 수급자와 비수급자의 취업률 차이를 조사한다는 실험의 취지상 핀란드 정부가 실업자 집단에서만 모집단을 선정했을 뿐, 직장의 유무나 경제력과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동일한 재화를 지급하는 것이 기본소득제도의 본래 의미다. 처음부터 기본소득제도가 ‘복지병’을 치유하기 위한 대책으로 제시된 이유다.

◇ 기본소득의 전도사가 된 CEO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부족해지면 기본소득의 중요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는 리처드 브랜슨(버진그룹 회장)의 트위터. <트위터>

BBC 등 외신들은 “핀란드 현지 언론은 사회보장국이 실험 확대를 위해 정부에 7,000만유로의 자금을 요구했다고 보도했으며, 사회보장국 관계자는 이를 부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꼭 7,000만유로가 아니더라도 기본소득제도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오래 지급하려면 상당한 재원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이코노미스트의 2016년 조사에서 OECD 34개국 중 4번째로 많은 기본소득을 제공할 여력이 있다고 평가(한국 12위)받은 핀란드에게도 벅찬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와이 콤비네이터의 샘 알트만,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등 세계 최고 기업의 경영자들이 기본소득제도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은 이들의 부족한 금전감각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 저명한 CEO들은 제각기 제도의 보완책을 제안하거나 핀란드처럼 직접 참가자를 모집해 실험에 나서는 등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는 작년 7월 알래스카 여행을 다녀온 후 페이스북 포스트를 통해 기본소득제도의 새로운 운영방식을 제안했다.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 것은 알래스카 주정부가 운영하는 ‘알래스카영구기금(APF)’. 주 정부가 석유산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의 일부를 매년 주민들에게 되돌려주는, 기본소득의 성격이 매우 강한 제도다. 지난 2016년에는 이 기금을 통해 알래스카 주민 한 명당 1,022달러가 전달될 수 있었다. 저커버그는 알래스카영구기금이 조세수입 대신 천연자원을 기초자산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접근법’이며, 복지국가가 아닌 ‘작은 정부’ 체제 하에서 실행됐다는 점에서 ‘탈정파적 아이디어’라고 호평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엑셀러레이터(창업 투자·육성업체) ‘와이 콤비네이터’는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 지역을 대상으로 자체적인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소득의 보장과 지출의 자유가 저소득층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행복수준의 변화는 어떠한지를 관찰하는 것 등이 목적이다. 다만 실험이 2016년 5월부터 시작됐고, 와이 콤비네이터가 설정한 실험 기간이 5년이기 때문에 결과를 받아보기까지는 아직 오랜 시간이 남아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