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정호승 시인의 <꽃을 보려면> 일세. 꽃씨 속에는 숨어 있는 것들이 많네. 시인의 말대로 작은 꽃씨 속에는 꽃, 잎, 어머니가 숨어 있네. 하지만 그것들이 누구에게나 보이는 건 아니야. 그렇게 숨어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서는 눈이 녹고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야만 하네. 자연의 이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말일세. 대다수 식물들은 따뜻한 봄이 되어야만 잎과 꽃을 보여주니까.

시인은 꽃씨 속에 어머니가 숨어 있다고 말하네. 맞는 말일세. 꽃씨 속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말과 비슷한 뜻이지. 꽃씨는 생명의 근원이며, 그 꽃씨 속에는 한 생명체가 우주에서 받은 모든 것들이 들어있지. 자연의 빛과 물과 향기가 들어있어. 그런 것들이 흙 바깥으로 다시 나와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다시 따뜻한 우주의 힘이 필요하지. 그러니 꽃과 잎을 보기 위해서는 누구든 먼저 “들에 나가” 봄을 불러와야 하네. 게다가 모든 생명체들은 세상이 평화로워야 제대로 성장하고 꽃을 피울 수 있어. 그래서 시인이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네. 부모 형제나 친구 등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전쟁을 말하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위선자일 뿐이야. 이유가 뭐든 전쟁은 모든 생명들을 위태롭게 만드는 최악의 선택일세.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과 잎을 보고, 어머니 우주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먼저 봄이 와야 하네. 사람들 마음이 따뜻해져야 해. 특히 많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지도자들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더 따뜻해야만 하네.

지난 27일 많은 사람들이 판문점에서 남북의 두 정상이 분단의 선을 지우기라도 하듯 손을 잡고 함께 넘나드는 모습을 보았네. 오후에는 두 사람이 도보다리 끝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30여분 동안 ‘밀담’을 나누는 모습도 보았어. 그날만은 그들이 우리 민족 구성원들을 대표해서 먼저 들에 나가 봄을 부르고, 꽃을 피우고, 평화를 즐기는 선구자들로 보였네. 두 사람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할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전쟁이 곧 일어날 것 같아 불안에 떨었던 사람들에게 이 땅에‘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선언보다 더 감동적인 선물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아직도 가슴에 ‘칼’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깝기도 하네. 미국 국무장관으로 새로 임명된 마이크 폼페이오가 지난 4월 초에 CIA 국장 신분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전쟁은 끝난다! 미국, 그리고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현재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말해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및 핵실험장 폐기를 선언해도, 그들은 아무 것도 믿지 않겠다고 아우성이네. 대신“깨어있는 국민이 자유대한민국을 지킨다”면서 “어떤 비무장지대 남북평화쇼에도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선량한 시민들을 선동하고 있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판문점 선언도 “북의 통일전선 전략인 우리 민족끼리라는 주장에 동조하면서 북핵 폐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 적은 발표문”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네. 많은 사람들을 감격시킨 남북 정상회담도“결국 김정은과 문 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쇼”에 불과하다고 비난만 하고 있구먼.

가슴에 칼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계절이 바뀌어도 봄은 오지 않는 법일세. 계절은 분명 봄이고, 많은 사람들이 밖에 나가 따뜻한 햇볕 속에서 다양한 꽃들 보면서 봄을 즐기고 있어도, 마음을 꽉 닫아버린 사람은 계절의 변화도 감지하지 못한 채 항상 겨울에 갇혀 있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들 중 으뜸인 봄도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 ‘깨어있는 국민’을 말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그가 말하는 ‘깨어있는 국민’은 누구일까? 설마 예전에 ‘통일이 대박이다’는 말만 앞세웠던 사람, “역사를 바르게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선량한 시민들을 가르치려고 했던 전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른바 태극기부대원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자신이 먼저 미몽에서 깨어나야만 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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