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 보유한 주식 1주당 1표를 주는 단순투표제와 달리, 집중투표제는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한다. 현재 소액주주의 권리행사를 보호할 수 있는 투표방법으로 논의되는 중이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투표권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1인 1표’ 제도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원칙이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투표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인 1표제(단순투표제)의 ‘시장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1원 1표제는 생각보다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많다. 특히 보유한 주식을 근거로 의결권을 가지는 주주총회의 경우 ‘1주식 1표제’의 문제점들이 부각되면서, 그 대안으로 집중투표제가 떠오르고 있다.

◇ 왜 집중투표제인가

집중투표제가 주주총회 의결방식의 새 선택지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단순투표제가 투표참여자들의 선호를 반영하는데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 안건이 상정된 표결의 경우 대주주에 의한 승자독식이 가능하다는 약점이 그것이다. 1주 1표제 하에서 주주들의 의결권이 51대49냐, 90대10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과반을 차지한 대주주가 존재하는 이상 소액주주들의 권리행사는 항상 ‘죽은 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집중투표제 하에서는 선택과 집중의 원리가 작용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는 회사가 3명의 이사를 선임한다면 1주당 3표를, 4명이라면 4표를 제공한다. 소액주주로서는 의결권을 여러 후보자에게 분산투자하는 대신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한 명에게 몰표를 줄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일례로 발행주식 100주 중 70주를 가진 A와 나머지 30주를 가진 B가 이사 3명을 선임하는 주주총회에 참석한다면, 집중투표제 하에서 B는 후보자 한 명에게 90표를 보냄으로서 자신의 선호를 반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이사 구성의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아직까지 금융권에서 한 건의 사례도 나오지 않은 노조추천 사외이사도 집중투표제 하에서는 주주총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집중투표제 논의가 경제민주화 담론과 분리되지 않는 이유다.

◇ 집중투표제, 5년 만에 다시 추진… 이번엔 다를까

현재 한국의 상법 제 382조 2항은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 3% 이상을 보유한 주주(주주제안권이 있는 주주)에 대해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회사에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바꿔 말해 회사 측에서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법무부는 지난 2013년 7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상법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으며, 여기에는 집중투표제의 부분적 의무화도 포함돼있다. 382조 2항의 예외조건 때문에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법무부의 조사에 따르면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않은 기업은 상장회사 734곳 중 57곳(7.8%), 상위 100대 기업 중에선 4곳에 불과했다.

재계의 반대와 정권의 무관심 속에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던 이 상법개정안이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8년 업무보고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선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법무부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관련 의견서를 제출하며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골자는 ‘투명성에 대한 요청이 높은’ 일정 자산규모 이상의 상장회사에 대해 집중투표제를 정관에서 배제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다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민연금 역시 의결권 행사지침에 집중투표제 찬성 근거를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5년 만에 다시 불붙은 집중투표제 논의에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쟁점은 경영의 자율성 문제, 그리고 해외 투자자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작년 2월 집중투표제를 가정하고 국내 주요기업의 이사 선임 내역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10대기업 중 4곳의 이사회에 외국계 투자기관이 선호하는 인사가 1명 이상 포함됐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차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한 사실 또한 경제계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집중투표제의 폐지가 국제적 추세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은 1940년대부터 집중투표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했지만 현재는 대다수의 주가 의무규정을 폐지했다. 현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주는 애리조나와 네브래스카, 사우스다코타 3곳뿐이다(노스다코타·웨스트버지니아·캘리포니아·하와이는 부분적 의무화).

다만 한국과는 경제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곤란하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의 방문옥 연구원은 2013년 보고서를 통해 “미국 기업들은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편이므로 이사 전원이 대주주 추천후보로만 채워지는 것을 막는 데는 집중투표제보다 과반수 결의제가 효과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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