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의 이름으로 주둔은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각자 서명을 한 판문점 선언을 교환하고 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남북 평화협정 체결 후 주한미군 한반도 주둔 여부가 논란이 대상이 되고 있다. 문정인 특보가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에는 주한미군의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기고문이 공개되면서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평화협정 이후에도 주한미군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고, 북측에서도 철수를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북측의 시그널이 나온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회고에 따르면, 1992년 1월 22일 당시 김일성 주석이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를 미국에 보내 아놀드 켄터 미 국무부장을 만나게 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북미수교를 해주면 미군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한다.

1992년은 소련의 붕괴로 공산진영의 미래가 불투명했던 상황이었다. 북한은 북미수교를 통해 활로를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주한미군의 위상 변경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냉전시대의 주한미군의 성격이 ‘견제와 위협’이었다면, 수교 이후에는 동북아 질서를 안정시키는 ‘국제경찰’로의 전환이었다. 북측의 이 같은 입장은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게도 전달이 됐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각도 같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평화협정 이후 주한미군이 UN의 대표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재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에 따른 주둔과 유엔안보리 의결에 따른 유엔군 대표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평화협정이 맺어질 경우, 유엔사 대표라는 타이틀 유지 명분을 사실상 잃게 된다. 따라서 이후 주한미군의 주둔은 한미동맹의 문제가 되며, 주둔의 성격도 바뀔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2일 문재인 대통령은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이며,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다. 이는 평화협정 이후에도 한미동맹에 따라 주한미군이 그대로 주둔해야 하며 그 성격이 ‘질서유지’로 전화돼야 한다는 의미로 읽히는 대목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주한미군은 중국 일본 등 주요 강대국들의 긴장과 대치 속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3일 CBS라디오에 출연한 정세현 전 장관은 “지금 미군이 쓰고 있는 유엔군의 모자는 벗어야 된다. 그러나 미군은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 바로 그 대목이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한미동맹의 문제”라며 “주한미군 사령관이 미군 사령관과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2개 쓰고 있는데 그 중 유엔군 사령관 모자는 벗어야 된다. 그러나 그게 바로 철수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측이 (주한미군 주둔을) 양해하는 조건에서 이번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를 요구하지 않았겠는가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철수가 조건이었다면 처음부터 북미정상회담을 안 하려고 했을 것”이라며 “앞으로 용산에서 계속 미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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