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3일 오후 2시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위탁택배노동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조나리 기자>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우정사업본부가 오는 7월1일 직영집배원들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비정규 택배 노동자들의 반발에 대비하기 위해 자회사를 통해 동향파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우정사업본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으로, 향후 논란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자회사 내세워 노동조합 동향 파악?

지난해 7월말까지 9명의 집배원이 과로사로 숨진 가운데 올해 2월 강성주 우정사업본부 본부장은 집배원들의 근무시간을 주 52시간 이내로 단축시키겠다고 밝혔다. 우정사업본부는 정부 방침에 따라 오는 7월1일부터 이를 시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위탁택배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정사업본부는 또 이를 추진하기 위해 자회사인 우체국물류지원단(이하 물류지원단)에게 위탁택배원 계약 등의 업무를 위임했다. 물류지원단은 오는 31일까지 위탁택배 노동자들을 모집한다. 그러나 실상은 물류지원단이 현장 택배 노동자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택배연대노조(이하 노조)는 3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물류지원단은 ‘충청청 소포위탁배달원 조합관련 현안사항 보고’ 문서를 통해 소포위탁배달원의 성향분석과 택배노조 가입관련 배달원 반응, 조합 주요정보 획득 방안, 계약 및 단체관련 배달원 여론파악 등을 보고했다.

특히 문서 상단에는 이같은 보고 목적에 대해 ‘2018년 7월 소포위탁배달사업 직접계약 시 배달원 단체행동 등으로 인한 계약지연 상황 대비 목적’이라고 적시했다. 노조는 국가기관이 사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노동조합에 대해 사찰을 진행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공개한 우체국물류지원단이 작성한 집배원 현안 및 여론파악 보고 문건 일부. <시사위크>

이날 이선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부위원장은 “우정사업본부의 근로시간 단축이 또 다른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한다면 이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며 “자신들도 문제가 될 것을 예상해 노동조합 등을 사찰했다. 정부 기관에서 이렇게 했다는 것에 더욱 분노를 느낀다”고 질타했다.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은 “최근 삼성의 노조와해 문건 및 불법사찰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국가기관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는 ‘재벌 택배사’들의 행태와 다를 바 없는 처사다”라고 꼬집었다. 노조는 또 해당 문건이 물류지원단이 작성한 사실을 인정했다면서 이를 지시한 윗선에 대해서도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 “집배원 과로사 줄이려고 위탁택배원 과로사 몰아”

택배노조는 우정사업본부가 위탁 택배사들의 반발을 예견했듯이 위탁 택배사들의 근무환경이 최근 들어 더욱 열악해졌다고 주장한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들의 근무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기 위해 토요 휴무를 순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전에는 집배원과 위탁 택배원이 나눠 배송했던 토요 배송물품이 위탁 택배원이 전부 처리하게 될 상황이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관계자가 3일 오후 2시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우정사업본부 규탄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조나리 기자>

구체적으로 택배노조는 ▲늦춰진 집배원 출근시간에 따라 간선차 지연출발 ▲토요 배송물품 떠넘기기 ▲상대적으로 배송이 용이한 구역 차별적 배치 등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같은 방침이 기존 위탁 택배원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규탄했다. 아울러 위탁 택배원들의 반발을 방지하기 위해 수십개의 징계안을 근로계약서에 담았다고 주장했다.

우정사업본부의 이같은 독소조항들은 2013년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들로부터 ‘노비계약’이라는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실제로 택배노조가 공개한 계약서 일부를 보면 기본원칙 위반은 물론 차량사고 제재, 부적정한 업무처리에 대한 처리기준 등 25개가량의 계약해지 사유를 적시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현재 위탁 택배원들에게 계약 우선권을 주고 있다. 위탁 택배원들은 오는 31일까지 해당 계약서에 동의를 해야 한다.

이에 대해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정사업본부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과 어느 것 하나도 부합하는 것이 없다”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그에 따른 고용 확대 등 모두 다 위탁 택배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집배원들의 근로시간은 당연히 단축해야 한다. 또한 위탁 택배원들 역시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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