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명예와 재산 둘 중에 하나를 잡으라면 명예를 선택하고 싶다. 명예라고 해서 위선으로 꽉 찬 정치가들의 가증스러운 거짓 명예가 아니다. 함께 봉사하는 사람들로부터 진심으로 존경받고 그들이 인정하는 그런 명예를 얻고 싶다.

재산은 우리에게 더 이상 소유물이 아닌 듯하다. 잠시 점유되고 또 공유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병들어 죽으면 내 것이었으나 마음대로 저 세상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강도나 화재 등 불의로 사고로 다 사라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런 일을 당하기 전에, 좋은 곳에 바람직하게 썼다면 어쩌면 참담한 꼴도 당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언제부턴가 일부러 선한 일을 하고 있다. 다만 굳이 돈에 꼬리표는 붙이지 않고 언제 얼마나 냈는지 기억하지 않고 잊으며 살고 싶다. 사실 누가 물어도 얼마 냈는지 모르고 싶었고 이제 실제로 내고는 있지만 연말정산할 때나 부득이하게 알게 된다. 매년 5월이면 환급금으로 해외여행도 할 수 있으니 적은 돈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굳이 떠들어대고 싶지 않다. 이미 좋은 곳에 쓰인 돈에 굳이 꼬리표를 붙인들 아직까지 붙어 있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을 나눈 아름다운 마음과 받은 이가 좋아하거나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실천하고 싶다. 아무 말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돈은 사라진 것도 아니며 굳이 기억이나 마음 속에 남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왠지 좋은 업으로 남아 전생과 과거의 악업을 고치고 미래나 다음 생을 기약하는 DNA로 남을 것 같다.

아무튼 이 생에서 지금까지 고통스러웠다면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봉사를 하고 기부를 하며 우리에게 허용된 재산을 나누며 맑고 밝은 이름으로 살고 싶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들조차도 호랑이처럼 헛된 이름이라는 외피만 남길 따름이다. 냄새 나거나 금방 썩어 공유할 수도 없는 고기는 남아도 냄새도 맡고 싶지 않을 것이다. .

뉴칼레도니아 수도 누메아에 위치한 뉴칼레도니아 박물관의 직원들의 환한 모습. <하도겸>

모든 재산은 다 큰 자식을 주느니 이 사회의 어두운 곳에 쓰고 싶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맡겨서 대신 좋은 곳에 쓰게 하고 싶지만, 돈 앞에 사람들이 너무 무너진다. 인건비나 경상비가 거의 안드는 자원봉사자와 기부자들로 모인 NGO가 거의 없다. 먹고 살자니 어쩔 수 없겠지만, 현지에도 못가고 어려운 사람들도 못받는 간접비나 내려고 소중한 돈을 매달 낼 생각은 없다. 지금은 지인들과 NGO를 만들어서 함께 즐기며 봉사하며 행복을 일궈가고 있다.

고통은 항상 다가온다. 이 나이쯤 되니, 싫고 화나고 피해도 사라지지 않고 이자에 아니 곱절로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을 안다. 이젠 마주하며 받아들이고, 동감하며 친구처럼 대화하고, 오히려 돕기 위해 더 챙겨주는 배려까지 하려고 한다. 배구에서 스파이크가 오면 충격완화를 위해 리시브하고 동료에게 토스하고 다시 기회를 잡아 거꾸로 가벼운 스파이크로 공을 넘기듯이.

번뇌의 친구가 1,000원을 빌려달라고 강요하면 2,000원을 내면서 나중에 찾아서 더 줄까라고 묻고 싶다. 결국 “뭐 그렇게까지 한 것 없고......”라는 말을 들어야 안심이 될 것도 같다. 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선한 일에 1,000원을 권선하면 1,000만원이라도 만들어 내고 싶다. 좋은 일 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시그널이라고 여겨서, 지금 전생과 이생의 빚을 여기서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찬스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미래나 내세를 위해서 쌓아야 할 경비라고 여기고 공덕이라는 복전통장에 기꺼이 비실명으로 입금을 한다.

줘도 못 먹는다는 말이 있다. 기회가 와도 그것을 못 알아보고 지나치면 후회만 남을지도 모른다. 권선을 할 때 안한다면 또 미래와 다음생은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으로 예약이 될 것만 같다. 누구는 다음에 하겠다고 한다. 오늘이 마감이며 저녁이 되면 부도처리가 될 지도 모르는데 내일 주겠다고 한다. 주고도 욕을 먹는 일이다. 오히려 말을 끄내기도 전에 알아차려서 먼저 좀 돕고 싶다고 미리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덕택에 직장이 있어서 가진 돈을 다 기부해도 굶지 않고 먹고는 살 것 같다. 사람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오히려 병들고 아프고 배고픈 상황이 오면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아니면, 더 어렵고 아픈 이를 위해서 봉사하러 가도 될 듯하다. 나만을 위해서 살지 않고 남과 나누며 사는 인생. 재산의 대부분 아니 최소한 50%이상을 나누며 또 봉사를 하며 여생도 나누고 싶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먼나라 프랑스의 귀족이나 부자들이나 하는 나눔이나 품격이 아니다. 국적이나 신분 그리고 계층 등을 따지지 않고 모두 귀하게 대접하고 나누는 일기일회의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의 품격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오늘날의 귀인이 아닌가 싶다. 우린 그런 사람이다.

이전에도 못했고 지금도 잘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꼭 한번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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