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원내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가 서로 눈길을 피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드루킹 특검’을 둘러싼 여야 이견으로 5월 임시국회도 파행과 공전만을 거듭하고 있다. 여야 4개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은 8일 오후2시를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의견 조율에 나섰지만, 이미 협상 시한은 넘겼다. 이처럼 여야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사이 정작 처리가 시급한 민생법안과 추가경정예산(추경)안 등은 ‘적기’를 놓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3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 이후 국회에 접수된 법안 건수는 이날 기준 655건이다. 4월 임시국회에 이어 5월 임시국회 역시 본회의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으면서 법안 방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20대 국회 전체로 보면, 국회에 접수된 13,589건의 법안 중 9,478건이 계류 중이다. 약 70%에 달하는 법안이 방치된 것이다.

일단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정상화를 위해 야당이 주장하는 ‘드루킹’ 특검을 수용하되, 몇 가지 전제조건을 달았다. ▲24일 특검법-추경안 연계 처리 ▲여당의 특별검사 거부권 ▲명칭은 ‘드루킹의 인터넷상 불법댓글 조작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 등이다.

정부의 국정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14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조건도 덧붙였다. ▲물관리 일원화법 ▲대도시권광역교통법 ▲부패방지 권익위법 ▲행정심판법 ▲국민투표법 ▲지방사무 일괄 이양법 ▲대통령등 경호법 등 정부조직법 외 7대 법안과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 ▲건설근로자 고용 개선법 ▲중소기업 중소상인 생계형 적합업종법 ▲가맹사업 공정화법 ▲화물노동자 처우 개선법 ▲미세먼지 특별법 ▲미투(MeToo·성폭력 고발 운동) 관련 법 등 7대 민생법안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이 같은 민주당의 ‘조건’이 사실상 특검을 무력화하려는 ‘꼼수’라는 입장이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특검을 수용하려면 특검을 특검답게 수용해야지, 사실상 무늬만 특검인 유명무실한 특검을 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고,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무슨 특검에 그렇게 전제와 조건이 붙고 도저히 야당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요구 하는가”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여당이 요구한 법안 중 상당수는 중소기업·영세자영업자·소상공인 등과 직결돼있어 야권을 향한 비판 공세가 거세다.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의 경우 퇴직공제부금 인상과 퇴직공제 적용 대상 확대, 전자카드제를 활용한 퇴직공제부금 투명화, 임금지급보증제를 통한 체불 근절 등을 골자로 하고 있어 건설업계 노동자들이 조속한 처리를 요구해온 법이다.

‘중소기업·중소상인 생계형 적합업종법’ 역시 소상공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5월 임시국회 내에 해당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6월30일 일몰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어묵·두부·원두커피·김치·재생타이어 등에 대한 대기업 진출 규제가 풀린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는 하루빨리 5월 임시국회 일정을 수립하고, 적합업종 특별법을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가 이번 국회를 열고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법들이다. 이건 사실 조건도 아니다. (시급함을) 다시 환기시키고 이런 걸 반드시 하자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건 게 무슨 문제인가. 조건이라기보다는 당연히 국회가 해야 할일을 열거한 것 뿐”이라며 “이런 조건이 무리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는지, 한국당만 무리하다고 하는 건 아닌지, 바른미래당도 이게 무리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법은 안 된다는 건지 얘기를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야권은 ‘조건 없는 특검 수용’이 전제되지 않으면 법안 처리를 위한 국회 정상화 역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제대로 된 특검만 수용한다면 청와대와 민주당이 원하는 것들, 민생법안이나 현안 입법들 많이 통과시킬 생각이 있다”며 “판문점 선언 역시 한국당과는 다르게 우리는 비준 동의 생각이 있다. 민생법안들 민주당이 말한 것 뿐만 아니라 수십, 수백개도 통과시키겠다”로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국당의 천막농성과 원내대표 단식농성에 이어 바른미래당 역시 이날 의원총회를 통해 철야농성과 전국 대국민서명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정하면서 국회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바른미래당은 “특검촉구 및 문재인정부의 민생경제 무능에 대한 규탄대회 개최와 관련한 논의가 있었고 적절한 시기와 방법 등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도 밝혔다.

이날 정오부터 두 차례의 회동을 가졌던 여야 원내수석부대표들은 지금껏 논의했던 내용을 각 당 원내대표에게 보고하고 4개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을 재차 추진하기로 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수석은 “두 번의 협의과정에서 서로 의견 일치를 본 것도 있고 의견이 달라 좁혀야 할 부분도 있다”고 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수석은 “아직 아무것도 안정해졌다. 합의된 부분이 없다”고 전했다.

여야는 드루킹 특검과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시기 문제를 비롯해 특검법의 명칭, 특검 추천 방식 등을 두고 조율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 상황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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