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우원조의 ‘오지라퍼’
[우원조의 ‘오지라퍼’] 역경을 사랑한, 등소평
필자 우원조
▲17대 국회의원 정책비서관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19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연설비서관 ▲부산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심리학에, ‘회복탄력성’이란 말이 있다. 역경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을 말한다.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보통 사람들보다 잘 극복해 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더욱 풍부한 삶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이 몰랐던 내면의 또 다른 능력까지 발견한다.

등소평은 회복탄력성이 매우 강했던 인물이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집단적인 광기로 몰아넣었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당시 등소평은 모택동의 혁명동지였음에도,  ‘반모주자파(反毛走資派)’의 수괴로 몰려 홍위병으로부터 공개비판을 당했다. 게다가 큰아들 박방(朴方)은 홍위병으로 인해 반신불수가 됐다. 또한 모든 직책을 박탈당하고 시골로 쫓겨나, 채소재배와 노동을 하며 7년을 보냈다. 억장이 무너질 일을 겪었지만, 등소평은 묵묵히 인고(忍苦)의 시간을 견뎌냈다.

1974년, 주은래 총리의 도움으로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로 재기했지만, 4인방(모택동의 부인 장칭, 모택동의 동료였던 왕훙원, 장춘차오, 야오원위안을 지칭)의 농간으로 또 다시 실각되고 가택연금까지 당했다. 이후, 모택동이 사망하고 나서야 정국수습용으로 재기용된 후, 4인방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 중국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역경을 받아들이고 참아냈던 시간들은 등소평의 가장 강력한 힘이 되었다. 등소평은 ‘세 번 쓰러지고 네 번 일어난 역전의 용사’로서 마지막 정치적 위기였던 천안문사태의 시련까지 견뎌내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로서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가 됐다.
 
결국 등소평은 중국 역사에, ‘개혁개방 정책’의 입안자이자 강력한 추진력의 실권자로 기록되었다. 또한 견고한 죽의 장막 속에 숨어 폐쇄성과 후진성을 떨쳐 버리지 못하던 중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은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나니,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주고,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등소평은 ‘맹자 고자장(告子章)’의 이 구절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견뎌냄의 시간을 극복했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도 앞이 막혀 답답한,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은 정치적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가 누구든,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그런 것은 상관없다. 그저 고난과 역경을 받아들일 줄 아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큰 그릇이 되어,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시 쓸 인물로 등장해 주길 기대해본다.

등소평의 정치이념, ‘도광양회(韬光养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더 밝은 빛을 비추기 위해 짙은 어둠 속에 있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해당 박스는 '광고'입니다.
icon인기기사
[AD]
SPONSORED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