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세탁기/태양광 제품에 대한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를 WTO에 제소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스위스 제네바의 WTO 본부. <뉴시스/신화>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미국의 세탁기·태양광 제품 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가 결국 국제기구의 심사를 받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오전 9시에(스위스 제네바 기준) 해당 안건을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절차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 양자합의 종료 후 본격 재판 시작

WTO는 본격적인 심사를 시작하기 전에 당사자들 간의 협의를 먼저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반하는 조치로 피해를 입은 국가는 가해국가에게 협의를 요청해야 하며, 60일 이내에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상대를 WTO 분쟁해결기구에 제소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WTO 규정에 근거해 미국 측에 세이프가드 조치가 조속히 철회될 수 있도록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미 지난 2월부터 미국 측에 세이프가드 조치의 철회·보상을 요구했음에도 만족스러운 결론이 도출되지 못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양국이 양자합의 단계에서 분쟁해결절차를 마무리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본 재판에서 결정권을 가진 것은 두 분쟁 당사국이 합의해 선정(합의 미도출시 WTO 사무총장이 결정)한 패널들이다. 이들이 양국의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검토해 제출하는 ‘패널보고서’가 승패를 가르게 된다. 패소국가가 패널보고서에 불복할 경우 상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 국제기구가 분쟁해결절차에서 상소 제도를 인정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 중국·유럽연합·러시아도 WTO에서 미국과 맞대결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이후 숱한 무역규제와 관세조치들에 서명해왔으며, 개중에는 해당 산업계 전반을 뒤흔들어놓은 행정명령들도 있다. 당연히 WTO 제소를 선택한 국가도 한국이 처음은 아니다. 사안 자체가 유사한 만큼, WTO 제소를 택한 한국으로선 트럼프 행정부를 대상으로 한 세계 주요국의 소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찰할 필요성이 있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타깃이었던 만큼 진행 중인 소송도 많다. 미국이 지난 4월 3일(현지시각) 무역법 301조에 근거, 중국산 제품 1,300여개에 500억달러 규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중국은 이틀 만에 해당 안건을 WTO로 끌고 갔다. 두 국가는 현재 패널 조사의 전단계인 양자합의 절차를 진행 중이다. 백악관이 3월 중 발표한 철강·알루미늄 관세(각각 25%와 10%)의 경우 중국뿐 아니라 유럽연합과 러시아도 WTO에 제소한 상태다.

◇ 복잡한 절차와 백악관 방해에 재판 장기화 우려

한국은 과거에도 종종 WTO 제소를 무역 분쟁의 해결책으로 사용해왔으며, 승소율 또한 상당히 높았다. 다만 WTO에서 결론을 내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은 우려스런 부분이다. 분쟁해결 절차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제소국가 기업들의 피해는 누적될 수밖에 없다.

WTO의 상소제도는 판결에 대한 신뢰성을 담보하고 약소국의 불안을 다소나마 해소하는 등 여러 장점을 갖고 있지만, 단심제에 비해 필연적으로 재판 기간이 길어지게 된다. 패널 구성과 보고서 제출, 상소와 재심사에 보상 합의 등 모든 절차가 완료되는 데는 일반적으로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보잉(미국)과 에어버스(유럽연합)의 보조금 분쟁처럼 제소와 맞제소, 추가제소가 겹치면서 소송 자체가 장기화된 경우도 있다. WTO는 해당 사건에 2009년부터 개입했지만 아직까지도 두 항공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상소 절차뿐 아니라 심사 자체도 문제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CNBC에 따르면 현재 WTO는 상소위원 일부의 공석을 메우지 못해 실질적인 심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MIT 교수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WTO 상소위원회의 현 상황을 햄스트링 부상에 빗대기도 했다. WTO와 정반대되는 무역정책을 취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새 위원의 임명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현재 WTO 상품이사회에 4억8,000만달러 상당의 양허정지(보복관세) 추진계획을 통보한 상태다. WTO 세이프가드 협정문에 따르면 한국은 WTO 분쟁해결절차에서 승소하거나, 또는 통보 시점(2018년 4월 6일)으로부터 3년이 지났을 경우 보복관세를 시행할 수 있다. 즉 재판이 장기화된다면 한국은 보복관세를 시행하는 데만 최소 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