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1980년 5월29일 망월동에서 진행된 129구의 장례식. (오른쪽)계엄령 철폐를 외치는 시민들이 광주 동구 금남로 가톨릭센터 앞에서 공수부대원 및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5.18 기념재단>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비방 행위에 대한 처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5.18 당시 여고생들에 대한 성폭력 등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피해들도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북한군 개입설’ 등 허위사실들이 유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왜곡 행위들은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생산·유포되면서 점차 조직화됐다. 하지만 처벌법규가 미비한 상황에서 유족들의 고통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 막장 치닫는 5·18 왜곡 행위

제38회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찾은 여야 지도부는 한 목소리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페이스북을 통해 5.18 당시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비방이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5.18 당시 북한군 개입설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사실상 이같은 의혹을 제기, 유족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유포됐다. 극우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는 희생자들을 ‘홍어’로 비하하거나 5.18 사건을 폭동으로 매도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북한군 개입설도 사실인양 퍼져나갔다. 미국 인터넷 쇼핑몰에 문재인 대통령이 5.18 비상계엄 확대의 원인 제공자라는 내용의 책이 판매되고 있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우리도 5.18 피해자', '5.18은 폭동' 등을 주장했다. <뉴시스>

일부 보수단체들은 5.18 유족들이 막대한 보상금을 받고 있다거나, 자녀들도 대학에 특례입학을 하고 있다며 분열을 조장했다. 또한 희생자들을 유공자가 아닌 폭도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5.18에 대한 왜곡은 군 당국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10일 활동을 마무리한 ‘5.18 헬기사격 및 전투기 대기 관련 국방부 특조위’는 1996년 기무사가 5.18 관련 자료를 불태우고 정부 차원에서 이같은 왜곡 작업을 운영한 사실을 밝혀냈다.

얼마 전 해제된 미국 기밀문서에는 5.18 사건 배후에 북한군이 개입됐다고 주장한 사람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는 내용도 드러났다. 1996년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당시 전남도청 시민군을 학살하는 데 참여한 혐의로 이미 무기징역이 선고된 바 있다.(다만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명령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북한군 투입설을 인용, 법원으로부터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명령을 받은 상태다.

외국에서는 어떨까. 독일에서는 혐오와 폭력을 조장하고 ‘유대인집단학살’ 등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처벌 대상이다. 왜곡에는 나치당의 학살행위를 찬양하거나 부인하는 행위 모두 포함된다. 프랑스도 2차 세계대전 당시 범죄를 의문시하는 사람을 처벌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포르투갈, 루마니아, 리우타이나, 이스라엘, 캐나다 등도 나치당의 유대인 학살행위를 부인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 “유족들 고통은 현재진행형... 비방 멈춰야”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사건에 대한 왜곡행위를 처벌하는 법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보수논객 지만원 씨도 무죄판결을 받았다. 형법상 명예훼손은 ‘특정 사람’에 대해 ‘특정 허위사실’을 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특정 피해자가 없는 한 5.18 사건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만원 씨에 대한 무죄 판단은 5.18 사건에 북한군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거나, 얼마든지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식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만원 씨 대법원 판결 후 5.18에 대한 왜곡과 비방이 더욱 노골화 됐다는 게 5.18 단체들의 주장이다.

2017년 4월2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 국혼운동본부 회원들이 전두환 회고록 지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기봉 5.18 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역사적사건을 왜곡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법률 제정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고, 실제 법안도 발의가 됐었지만 여전히 반대하는 정당이 있어서 진척이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이미 사실관계가 규명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비방하는 행위는 엄격히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봉 사무처장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표적인 왜곡 사례로 “북한군 개입설이 가장 대표적이긴 하지만 보상금과 관련한 비방도 심각한 상황”이라며 “피해자분들 중 살아계신 분들도 재심신청을 통해 국가폭력에 대한 피해보상을 받아야하지만 이를 비방하는 세력들 때문에 보상신청을 못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특정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면 유족들을 2차, 3차 피해에 노출되도록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유족들의 고통은 현재도 진행 중인데, 아픔을 공감해주진 못할망정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는 유족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5.18 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사건에 대한 왜곡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유대인 학살 등의 행위를 부인하는 것은 명백한 허위사실로서 자유로운 의견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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