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정상회담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전히 중국을 의심했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태도변화의 배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 전후로 중국을 다녀왔으며, 두 번째 방중 때는 시진핑 주석과 배석자 없이 단독회동을 하는 등 친밀도를 과시했다.

22일(현지시각)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배후설’을 언급하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이 북한에게 미국과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했다고 보느냐’는 미국 측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두 번째 방문하고 떠난 다음 태도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에 대해 별로 좋은 느낌이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성 발언을 한 뒤 “문재인 대통령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지금 말해도 좋을 것 같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조심스럽게 묻기도 했다.

◇ 조건 안 맞으면 회담 연기하겠다는 트럼프

예정에 없던 양국정상의 공동기자회견이 열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나왔다. 당초 양국 정상이 모두발언을 한 후 한 두 개 정도의 질문을 소화한 뒤 단독회담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면서 마치 기자회견과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실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말들을 질의응답 형식을 통해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중론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싱가포르 회담이 열릴지 안 열릴지는 두고 봐야 될 것”이라며 북미정상회담의 연기 가능성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기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됐다.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요지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에 대해 “일괄 타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제시한 북한과 의견을 달리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확인된 것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과정에 신뢰의 위기가 왔다는 점이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이 여전한 게 사실이다. 중국을 찾아간 것도 비핵화 협상 결렬을 대비한 ‘보험용’이 아니냐는 것이다. 협상과 파기가 이어졌던 과거협상이 반복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난처한 입장에 놓일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항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계속 강조했던 이유다.

◇ 문재인 대통령의 김정은 설득 기대

남북정상회담 이후 중국 다롄에서 시진핑 중국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 <뉴시스>

물론 불안하기는 북한도 매한가지다. 미국을 믿고 비핵화에 나섰는데, 약속했던 체제보장이나 경제지원 등이 기대 이하거나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볼턴 보좌관 등 미국 내 강경파의 ‘리비아식 해법’ 발언이 북한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원자력기구(KEDO) 관계자로 참석했던 한 교수에 따르면, 북한 권력층 사이에서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시리아 정권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류가 강했다고 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체제보장을 위해 핵개발을 했는데 자칫 핵도 잃고 체제도 흔들릴 수 있는 게 지금의 협상이다.

결국 북미 간 신뢰의 위기 해소라는 중대한 과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맡게 됐다. 한미정상회담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다음은 트럼프 대통령이 ‘체제보장과 경제지원’ 약속으로 김 위원장을 설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핫라인 통화나 북미회담 전 남북정상회담 등의 방안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넌지시 “(문 대통령이) 북미회담 전에 북한을 만날 수도 있고…”라며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tbs라디오에 출연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와 관련 “(중국과 만난 후) 북한의 태도가 변했다고 보기 때문에 북미정상회담을 하기 전 북한의 태도를 다시 변화시키라는 얘기인 것 같다”며 “트럼프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김정은이 확실하게 동의하도록 만들어 놓으라는 얘기다. 한미정상회담에 혹 떼러 갔는데 부담이 좀 많아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부담이 커진 측면이 있지만, 청와대 기류는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오늘 기분이 좋은 날이다. 한미정상회담도 잘 됐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북한을 설득할만한 미국 측의 ‘카드’를 받아왔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북한도 이날 지금까지 방북을 불허했던 우리 측 취재진 명단을 접수, 풍계리 핵폐기 참관 외국기자단에 합류토록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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