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회 현장]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23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간담회장에서 윤충식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조나리 기자>

[시사위크|국회=조나리 기자] “과거 언론은 작업환경측정 보고서가 하나마나한 허술한 보고서라고 지적을 하더니 요즘엔 갑자기 국가핵심기술이 담긴 보고서가 됐다.”

윤충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최근 삼성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공개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 이같이 꼬집었다. 23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국가 핵심기술과 알권리’란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학계와 법조계, 시민단체,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 등 정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작업환경보고서의 허술함을 지적해 눈길을 모았다. 즉, 작업환경측정 보고서가 공개될 시 핵심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기우’라는 지적이다.

◇ 작업환경측정 보고서와 영업비밀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첫 발표로 작업환경측정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 설명한 윤충식 교수는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는 산업재해를 입증하기 위한 자료가 아닌, 근로자 또는 작업장에 대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작성하는 보고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를 보면 마치 작업환경측정 보고서가 영업기밀이 담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교과서적인 수준의 기본 내용이 담겼다”면서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를 보고 영업비밀이나 핵심기술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고서의 내용들은 이미 인터넷 등에서 공개가 된 것들”이라며 “오히려 구글 등에서 검색해보면 작업장의 기계과 모델명, 사용 장비 등이 기사로 소개돼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윤충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공개한 2012년 당시 작업환경측정 보고서가 허술하다는 언론 기사 내용 일부. <윤충식 교수>

윤 교수는 “2012년에는 보고서의 허술성에 대해 지적하는 기사들이 나왔는데, 지금은 마치 핵심기술이 담긴 것처럼 논란이 되고 있다”면서 “보고서에는 기업에서 우려하는 핵심기술이 포함돼 있지 않다. 애초에 산재 피해를 주장하는 작업자에게 공개를 했었다면 지금의 사태로까지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효창(두원공과대학교 교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장 역시 작업환경측정 보고서의 부실성을 지적했다. 방 위원장은 또 보고서의 작성 비용을 사업주가 부담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 위원장은 “공학자 입장에서 작업환경보고서를 봤을 때 너무 부실해서 충격을 받았다”면서 “실제 기업의 작업장 현장과 이 보고서가 일치하긴 할까하는 의문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보고서 작성 비용을 사업주가 지급하는 구조인데, 이는 사업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면서 “사업주가 오늘은 안된다고 하면 못하는 것이고, 이 내용은 적지 말라고 하면 못쓰는 것이다. 종속적인 구조에서 어떻게 감시가 가능하겠는가. 반드시 개선해야 하는 문제다”라고도 강조했다.

◇ “국가핵심기술=영업비밀 프레임 벗어나야”

“미국과 유럽에서는 작업장의 유해요인에 대해 기록을 의무화하고 정보 접근권도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기업들은 왜 망하지 않는가. 왜 우리나라 기업만 망한다고 하는가.”

공유정옥(작업환경의학 전문의)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는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공개는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는 것”이라며 “글로벌 기준에서 본다면 이같은 사건으로 토론회가 열리고 기업의 흥망 여부를 논하는 상황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공유정옥 활동가에 따르면 미국은 화학물질의 정체를 포함해 안전보건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원칙적으로 보장한다. 또한 영업비밀이라고 할지라도 화학물질을 공개해야 하거나 요구할 수 있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공익을 위한 정보, 공공기관의 공개의무나 사회적 약속에 따른 정보의 제공의 경우 영업비밀 보호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국가핵심기술과 영업비밀을 혼동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애란 법조공익모임 나우 변호사는 “법원에서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이유는 보고서의 내용이 영업비밀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갑자기 삼성이 보고서 내용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확인해달라는 청구를 하면서 프레임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가 정부측 관계자의 답변을 듣고 있다. <조나리 기자>

박 변호사는 “이후 마치 국가핵심기술이 영업비밀인 것처럼 분위기가 흘러갔지만, 설령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법원의 판단과는 별개의 개념”이라며 “애초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공개 여부의 쟁점은 국가핵심기술 여부가 아니라 영업비밀 여부였다. 법원은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판시한 것”이라고 피력했다.

두 정부 기관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17년간 알권리를 연구하면서 국가 기관들끼리 다른 소리를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면서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 관계자)두 분들은 이런 경험이 있으셨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영만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 국장은 “노동부는 근로자들의 산재 피해 입증과 관련해 최대한 배려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라고 답했다.

전진한 소장은 또 “제2롯데월드가 무너진다는 소문이 돌자 결국 롯데 측은 안정성 용역보고서를 공개했다”면서 “당시 보고서에 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공개를 결정했다. 설사 영업비밀이거나 설사 국가핵심기술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건강과 생명보다 중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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