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개인담화 형식으로 비판한 존 볼튼 백악관 안보보좌관(좌)과 펜스 부통령(우)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4일 미국의 펜스 부통령일 콕 찍어 “주제넘게 놀아댔다”며 맹비난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볼튼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비판한 것에 이어 두 번째다. 최선희 부상의 담화는 한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첫 반응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진다.

내용적으로는 비판의 대상이 달라졌을 뿐, 취지는 전체적으로 대동소이했다. ‘선 비핵화 후 보상’이라는 이른바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은 강하게 반발하는 논조다. 북미회담 파트너인 트럼프 대통령이나 실무협상을 맡고 있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피한 채 ‘주변인’들을 겨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형식적으로는 ‘개인담화’의 형태를 취했다. 김계관 제1부상이나 최선희 부상 모두 신분상으로는 북한의 공직자라고 할 수 있지만, 소속기관이 아닌 ‘개인의견’을 전제했다는 게 특이사항이다. 실제 최 부상은 개인담화에는 “조미수뇌회담 재고려하는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북한 최고지도부나 당의 결정이 아닌 개인적 의견이라는 것을 강조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비록 ‘개인의견’ 형식을 취하지만 북한 지도부의 의견이 반영돼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전체주의 특성을 띠고 있는 북한 사회에서 국가존립에 관한 중대한 사안을 개인적으로 국제사회에 표출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다. 그렇다고 북한 지도부의 의견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개인담화’라는 전제가 걸린다. 어조도 협상국면에 맞지 않게 단호하고 강경한 측면이 있다는 문제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합의안 조율을 위한 이른바 0.5트랙으로 해석한다. 정부와 민간에 반반 걸쳐있는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 우리 측 의사를 전달하고 상대방 의중을 떠보는 방식이라는 의미다. 의사합치가 될 경우 정부차원에서 추진하면 되고, 불일치했을 경우 개인의견으로 치부하며 발을 빼는 일종의 외교술이다. 우리로 치자면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미국 싱크탱크들이 주최하는 세미나에서 다소 강한 발언을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해석하면, 북측이 협상의 의지가 여전히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선 비핵화 후 보상이라는 리비아식 방법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보다 구체적인 체제보장안을 미국 측에서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와 관련 한 라디오 방송에서 “조평통 위원장이나 노동당 대변인 성명이면 상당히 심각한데 보도 형식으로, 그것도 외무성이 아닌 개인담화 형식”이라며 “미국 측에 앞으로 쓸데 없는 요구를 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 정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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