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임시절 법원행정처에서 재판을 협상 도구로 내세워 박근혜 정권과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정치적 세력을 ‘부당한 영향력’이라고 불렀다. 이를 “허용하는 순간 어렵사리 이루어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상반된 결과를 발표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임시절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협상 도구로 박근혜 정권과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난 것. 그럼에도 특조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를 하지 못했다. 당사자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특조단은 강제수사권이 없다.

특조단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사법부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박근혜 정권과 협상을 위한 전략을 세웠다. 정권에서 관심을 갖는 재판과 판결을 협상 카드로 내세우려했던 것. 특히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조작 사건 관련 재판에선 청와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무적 대응 방안까지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자료는 임종헌 전 차장을 포함해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컴퓨터에서 발견됐다.

뿐만 아니다.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산하 소모임(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의 동향을 파악하고, 자발적 해산 유도 및 법원 운영위원회 결의 폐지하는 방안 등을 모색했다는 게 특조단의 설명이다. 소속 판사들을 해외 연수에서 배제하는 등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한 문건도 발견됐지만, 실제로 이행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특조단은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셀프 조사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강제 수사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가능성도 적지 않다. 참여연대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데다 사찰 피해자로 알려진 차성안 판사가 자신의 SNS를 통해 “특조단이 형사고발 의견을 못 내겠고, 대법원장도 그리하신다면 내가 국민과 함께 고발하겠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앞서 특조단은 지난달 2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답변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이달 24일에는 해외 출국을 이유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