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올해로 38년째를 맞은 광주는 여전히 왜곡과 폄훼, 그리고 심지어 조롱에서 자유롭지 않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발달로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게 불행한 현실이다. 뉴스타운·뉴데일리·프리덤뉴스 같은 극우 매체들이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극우 논객 지만원 씨의 ‘북한군 개입설’ 같은 황당한 이야기들이 아직도 버젓이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다.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4·19와 부마항쟁 등에 비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가 유독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960년의 4·19혁명은 전국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므로 그 전체를 왜곡하는데 한계가 있고, 1979년의 부마항쟁은 부산·마산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그 이후 경상도 정권이 장기 집권하면서 이를 5·18 광주처럼 흑색선전의 도구로 악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조영수 민주언론시민연합 협동사무처장의 견해다.

5·18 광주를 왜곡·폄훼하는 결정판은 지만원의 북한군 개입설이다. 5·18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 1개 대대 600명 정도가 광주에 내려 가 폭동을 일으키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는 황당한 이야기다. 그 때 광주에 온 북한군이 폭동을 지휘했고, 현지 양아치들은 이들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이다.

북한군 개입설은 2000년대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5·18 당시 부산 국제신보 기자로 광주 현지를 취재했던 조갑제 기자다. 극우논객으로 분류되기도 한 그는 북한군 개입설이 왜 허구인지 10여 가지 근거를 들어 반박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5·18은 무엇보다도 목격자가 많고, 취재기자와 그들이 남긴 비디오·사진 등이 많은데, 지금까지 현장을 취재한 세계 어느 기자도 북한군 개입을 말한 사람이 전혀 없다. 둘째, 북한군 수 백 명이 시민군 편에 서서 우리 계엄군과 전투를 벌였다는데 계엄군 어느 누구도 북한군의 출현에 대해 보고하거나 주장한 사람이 없다

셋째, 당시는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로 광주는 도로와 통신, 해안과 항만, 공항 등이 완전히 봉쇄된 고립무원의 상태였다. 그것을 뚫고 광주에 들어갔다면 계엄군은 모두 허수아비란 말인가? 또 침투병력의 3분의 2가 희생됐다는데 시신은 어디에 있으며, 이들을 섬멸한 국군은 누구인가? 무장간첩 한 명만 사살해도 포상을 받는데 북한 특수부대 수 백 명을 사살한 국군부대가 이런 자랑스런 사실을 이제껏 숨겨왔다는 말인가?

넷째, 만약 5·18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전두환 정권하에서는 반드시 이를 확인했을 것인데 그런 적이 전혀 없었다. 다섯째, 그동안 5·18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 조사가 여섯 차례나 있었지만 북한군개입 증거나 정황은 한 번도 없었다.

현지를 취재했던 조갑제 기자는 맨 마지막에 이렇게 반박했다. “5·18 당시 현지 시위대는 비록 반정부적(反政府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친북적(親北的)이지는 않았다. 시위대가 ‘간첩 같은 사람이 끼어 있다’며 군 당국에 신고하기도 했었다.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구호가 늘 나왔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 세력은 진실 위에 정의를 세워야지 정의 위에 진실을 세우려 해선 안 되며 신념보다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북한군 개입설을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놀랍게도 1980년 당시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었던 것으로 최근 비밀 해제된 미국무성 문서에서 밝혀졌다. 그해 6월 4일 주한미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22명의 신원미상 시신을 발견했는데 모두 북한 침투요원으로 보고 있다”고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당시 어떤 언론도 그 점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두환은 2016년까지만 해도 북한군 개입설을 일관되게 부인해 왔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자신이 낸 회고록에서 지만원의 주장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슬그머니 북한군 개입설에 동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비밀 해제된 5·18관련 미 국무성 비밀문서에는 “5·18은 공산주의가 배후에 있지도 않았고, 북한군 투입 사실도 없었다. 이건 확실한 사실”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만원 씨는 2017년 4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5·18 관련 영상에 나오는 478명이 모두 북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가운데 150명을 골라 ‘00번+광수’라고 이름 붙인 뒤 유튜브와 출판물을 통해 무차별 유포해 왔다. 이것은 뉴스타운 같은 극우 매체를 통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지만원씨는 2015년 5월5일부터 미국 정보부에서 영상을 분석했던 영상분석팀(필명 ‘노숙자의 담요’)의 지휘 아래 광주에 투입됐던 북한군, 즉 ‘광수’를 찾아 나선 결과 2018년 2월 16일까지 527명의 광수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광수’는 1980년 5·18 당시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을 지만원 씨가 임의로 만들어 붙인 이름이다. 그는 ‘제65 광수’라는 식으로 광수 앞에 일련번호를 붙여 유튜브와 출판물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포해 왔다.

그 중에서 ‘75광수’, ‘76광수’를 비롯한 9명이 지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이들 중에는 5·18 당시 시민군 측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63) 씨도 포함돼 있다. 법원은 지만원 씨와 뉴스타운 등을 상대로 원고측에게 200만원~1,000만원을 배상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1회 200만원씩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만원 씨가 1980년 5·18 당시 광주에 투입했었다고 주장하는 북한군 중엔 유명 인사도 많다. ▲김영삼 정부 시절 한국에 망명한 황장엽(1923~2010) 북한노동당 비서 ▲김정일의 여동생(김경희) 남편으로 김정은에 의해 제거된 장성택(1946~2013) 당시 국방위 부위원장 ▲북한 인민군 참모장 시절 6·25에 참전했고, 북한에서 몇 안 되는 원수 계급까지 올랐던 리을설(1921~2015) ▲아프리카 외교관 시절 한국으로 망명한 고영환(1953~) 국가전략연구원 객원 연구위원 ▲현재 북한 인민군 대장인 오극렬(1930~ ) 국방위 부위원장 등이 그들이다.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황장엽·이을설·장성택 등은 이미 고인이 됐지만 나머지 4명은 현재 한국에 살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바로 확인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지만원 씨가 운영하는 ‘시스템 클럽’에는 지금도 ‘00번 광수’로 버젓이 이름이 올라 있다. 당사자들은 왜 지만원 씨의 그런 주장이 허위 사실임을 알고도 아무런 법적 대응을 하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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