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2 19:27 (월)
[김재필 ‘에세이’]H에게-남북정상 만남에서 본 신뢰의 중요성
[김재필 ‘에세이’]H에게-남북정상 만남에서 본 신뢰의 중요성
  • 시사위크
  • 승인 2018.05.2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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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자네 혹시 아게라텀이라는 식물의 꽃을 본 적이 있는가? 도시의 화단에 많이 심는 한해살이 원예식물이지만 이 땅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외래종이라 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 뭐든 알아야 보이는 법이거든. 이 식물의 속명 아게라텀(Ageratum)은 그리스어로 늙지 않는다는 뜻이네. 실제로 싱싱한 실 모양의 꽃이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피어서 불노화(不老花)라고도 부르네. 오랫동안 색깔이 변하지 않으면서도 털북숭이처럼 송송이 달려 있는 모양이 넉넉한 느낌까지 주는 꽃이야. 그래서 꽃말이 '신뢰, 믿음'이라네. 오늘은 아게라텀의 보라색 꽃을 보면서 신뢰의 중요성에 관해 몇 마디 피력하고 싶네.

지난 일요일(26일)에 남북정상이 판문각에서 서로 포옹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았지?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오더군.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옳아. 긴급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번잡한 절차와 형식을 생략하고, 일상적인 만남처럼 쉽게 연락하고, 쉽게 약속하고, 쉽게 만나는” 판문점 ‘출퇴근 회담’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네. 대통령 말처럼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같은 만남이 자주 있어야 오해도 풀리고 정도 깊어지거든. 그러면서 서로 간에 믿음과 존경도 커지는 것이고. 서로 믿게 되면 눈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사이, 즉 마음이 통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을 걸세.

장자의 말처럼 서로 마음이 통하면 옳고 그름을 놓고 논쟁할 필요도 없네. 서로 믿는데 더 할 말이 뭐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요즘 젊은이들 연애하는 걸 보면 위태롭게 보여. 사랑을 자주 확인하려고만 들지. 하지만 상대가 나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지 자주 확인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서로의 관계에 대해 확신이 없고 불안해서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해주길 바라는 것 아닐까. 내가 젊었을 때는 사랑하는 사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말 자주 하지 안했네. 남세스러워서 그러기도 했지만, 그런 말 자주 안 해도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그런 말 하지 않는다고 시비하는 사람이 오히려 놀림을 당하거나 이상하게 여겨졌으니까. 믿으면 말이 필요 없네. 사랑하면 확인할 필요도 없어.

그러면 어떻게《장자》<달생편>에 나오는 관계, 즉 구두를 신고 있으면서도 구두를 신고 있다는 걸 잊고, 허리띠를 매고 있으면서도 허리띠를 매고 있다는 걸 잊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다른 사람과 가깝고도 지속적인 감정적 유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관계’ 에 참여하고 있는 두 사람의 적극적인 성찰과 실천이 필요하네.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다 그 관계를 위해 계속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야. 서로가 함께 노력해야만 상호신뢰가 형성되고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거지. 예를 들면, 공적영역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져 남녀평등이 법으로 보장되었다고 저절로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니거든. 사회 제반 영역에서 이른바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 모두 그들의 태도나 행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래야만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남녀가 실질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 이 말은 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랑과 신부에게 주례사로 자주 들려주는 말일세.

예전에 《논어》<안연편>에 나오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란 말을 소개한 적이 있지?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뜻이야. 어떤 나라든 국민들이 평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국가, 기업, 시민사회, 일반 국민들 상호간의 신뢰가 중요하네. 남과 북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야. 그 동안 남과 북은 서로를 믿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희생과 비용을 지출할 수밖에 없었어. 일종의 ‘불신비용’이지. 지금 남북한이 공히 갖고 있는 비합리적인 정치구조와 터무니없이 많은 국방비를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 걸세. 이제 남북한 모두 그런 불신의 늪에서 빠져나올 때가 된 것 같네. 물론 아직 갈 길이 험난하고 멀기는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서>라는 시가 생각나는군.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 한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 한다.” 남과 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와 번영과 행복을 가져다 줄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리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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