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국정농단 사건' 최순실씨의 항소심 9차공판에 증인신분으로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항소심 재판이 시작됐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신 회장이 롯데면세점 사업권 취득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상황이 다르다. 같은 사안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쟁점은 롯데면세점 사업권이 당시 그룹의 ‘시급한 현안’이었냐 여부다. 신 회장은 항소심 첫 재판에서 “롯데면세점과 관련한 청탁이 없었다”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 발목 잡힌 롯데면세점? ‘날개’될 수도

신 회장은 30일 서울고법 형사8부(강승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재판에서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신 회장은 우선 박근혜 전 대통령와의 독대에서 청탁을 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신 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는 처음이자 마지막 독대였던 만큼 청탁을 할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때까지만 해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의 인식은 깨끗하고 고결한 사람이었고, 저도 그랬다”면서 “그런 분에게 청탁을 한다는 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재판의 쟁점은 ‘청탁 여부’가 아닌 ‘그룹의 현안 여부’다. 앞서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모두 ‘시급한 현안’의 존재 여부로 운명이 갈렸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 측이 주장한 이 부회장의 현안은 경영권 승계였고, 신 회장의 현안은 롯데면세점 사업권 취득이었다.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 작업을 인정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 작업 자체를 부인, 대다수 뇌물 혐의가 무죄로 판단됐다.

이 부회장의 항소심은 이후 신 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1심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시간 순으로 보면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2월5일) ▲신동빈 회장 1심(2월13일) ▲박근혜 전 대통령 1심(4월6일) 순이다. 신 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1심을 진행한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앞서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 부회장의 항소심 논리에 따라 신 회장에게는 롯데면세점이라는 현안이 존재했다고 보고,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다.

마찬가지로 두 달 뒤 열린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에서도 ‘삼성의 승계 작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삼성에게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신 회장은 항소심에서 롯데면세점 사업권 취득이 그룹의 현안이 아니었다고 재차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에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 수첩이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가운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항소심에서 수첩의 증거능력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뉴시스>

◇ 변수 된 ‘안종범 수첩’, 증거채택 여부 관심

검찰은 면세점이 호텔롯데의 핵심사업 부분인 만큼 면세점 사업권 취득이 호텔롯데 상장에 중요한 사안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신 회장 측은 면세점 사업권 취득이 호텔롯데 상장에 있어 필수적 요소가 아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호텔롯데 상장을 위해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면세점 월드타워점의 가치가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물론 향후 재판을 염두에 둔 조치 일수도 있지만 객관적 자료를 입증하지 못할 시 검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롯데 측은 2015년 11월 잠실 면세점 사업권 경쟁에서 한 차례 탈락 한 후 서울 신규 면세점 추가 승인을 앞두고 이미 롯데면세점이 언론에 거론되고 있었다는 입장이다. 롯데 측은 이 시기가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2016년 3월 14일) 이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항소심 재판의 또 하나의 변수로 ‘안종범 수첩’도 거론되고 있다. 신 회장의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롯데의 면세점 특허와 관련해 안종범 전 수석에게 여러 차례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면서 “신 회장 역시 롯데에 유리한 방향으로 대통령의 영향력이 행사될 것으로 기대해 재단에 지원을 결정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해당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에서도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와 신 회장, 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의 수첩을 간접증거로 판단한 반면, 이 부회장의 항소심은 전문증거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문증거란 사람의 진술과 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사실을 증거로 하는 진술증거로서, 현행 형사소송법은 전문증거의 증거 능력을 엄격하게 인정하고 있다. 물론 그간 국정농단 재판에서 ‘안종범 수첩’은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지만, 신 회장의 항소심에서도 증거능력이 인정될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신 회장은 30일 항소심 첫 재판에서 “올림픽인가, 아시안게임인가에 선수를 육성한다고 해서 재단 지원금 낸 것인데, 이렇게 비난을 받고 법정구속까지 됐다”면서 “항소심에서 진실이 밝혀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현재 신 회장은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70억원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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