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양파처럼 까도 까도 끝없이 의혹이 제기됐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구속을 면했다. 이 전 이사장은 지난 5월 자신에게 제기된 각종 ‘갑질’에 대해 사실상 전부 부인하는 해명자료를 발표하며 쉽지 않은 싸움을 예고했다. 법원 역시 이를 받아들이고 이 전 이사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 결국 범죄 소명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재판 과정에서도 ‘법리다툼’보단 ‘진실공방’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 법원 “범죄 소명 부족”... 구속 면한 이명희

이명희 전 이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 4일 기각됐다. 이 전 이사장은 운전기사와 공사장 노동자, 한진그룹 직원 등에게 상습적으로 갑질을 일삼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이 전 이사장에 대한 구속 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혐의 일부의 사실 관계 및 법리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 피해자들과 합의한 시점 및 경위 등에 비춰 피의자가 합의를 통해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그밖에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볼 만한 사정에 대한 소명이 부족한 등을 종합할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전 이사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특수폭행 ▲상습폭행 ▲상해 ▲특수상해 ▲업무방해 ▲모욕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운전자 폭행) 총 7가지다. 이 중 이 전 이사장이 인정한 혐의는 단순 폭행뿐이다. 2014년 5월 그랜드하얏트인천 증축 공사장에서 당시 이 전 이사장이 난동을 부린 모습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겼기 때문이다. 이 전 이사장은 이외 나머지 혐의는 모두 부인하고 있다.

이 전 이사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이 전 이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를 촉구하는 글들이 잇달아 올랐다. 5일 기준 이 같은 내용의 글들은 현재 20개가 넘는다. 청원글을 올린 이들은 법원이 이 전 이사장의 거짓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줬다며 비판했다.

앞서 경찰은 혐의 소명을 위해 170여 명의 참고인을 조사하고 피해자 11명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 전 이사장 사건의 경우 자녀인 조현민 전무 때와 달리 피해자 대부분의 처벌을 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이사장은 지난달 28일과 30일 두 차례 경찰에 출석해 각각 15시간, 11시간씩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전 이사장은 경찰 조사에서 대부분 혐의를 부인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경찰은 이에 증거인멸 우려가 있고, 특수상해·상해·특수폭행·상습폭행 혐의는 합의를 해도 처벌이 가능한 점 등의 이유로 영장을 청구했다. 반면 법원은 범죄소명이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경찰이 내세운 증거 대부분이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예견됐던 진실공방 프레임... 고민 깊어지는 검찰

지난 5월 9일 한진그룹은 이명희 전 이사장의 갑질 의혹에 대한 장문의 해명자료를 발표했다. 해명자료는 ▲그랜드 하얏트 인천 의혹 6개 ▲평창동 자택 의혹 5개 ▲회사 경영 관여 의혹 5개 ▲제동목장 및 파라다이스호텔 의혹 2개 등 총 18개 의혹에 대한 반박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제기된 의혹들은 구체적인 반면 이 전 이사장의 해명은 단순히 “그런 사실이 없다”는 내용뿐이었다.

일례로 회사 경영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조양호 회장 지시에 따라 컨설턴트 자격으로 점검했다”거나, 각종 폭언에 대해서는 “조언만 했음. 윽박지른 바 없음”, 폭행에 대해서는 “폭행한 사실 없음”, 특정 직원에게 휴가 등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회사 방침에 따라 휴가를 신청하므로, 휴가를 따로 준 바 없음”, 일부 직원들의 해고 의혹은 “인사권 없으므로 해고한 바 없음” 등 단순한 부인으로 가득 찼다.

이명희(빨간원) 일우재단 전 이사장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안전모를 쓰고 있는 여성 관계자를 강하게 밀치고 있다. 경찰은 영상 속 가해 여성이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 JTBC 뉴스룸 영상 캡처>

문제는 이 전 이사장의 공사장 난동 영상과 운전기사에게 욕설을 하는 음성파일 외에는 물증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수사 당국에서도 이 전 이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등의 조치는 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전 이사장 측도 향후 재판에서 법리다툼 보다는 진실공방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의연대 민생국장 소속 이민석 변호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어떤 혐의는 인정하고, 어떤 혐의는 합의를 봤다면서 어떤 혐의들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이라며 “수사당국과 법원에서도 그런 점을 주의 깊게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측의 주장이 엇갈릴 때는 결국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 등 신빙성 여부에 따라 판단한다”면서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법원에서도 피해자들의 진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한항공직원연대는 5일 성명서를 내고 “지금까지 공개된 녹취와 영상만 봐도 이명희 전 이사장이 갑질을 넘어 일상적인 폭력을 행사에 왔음이 명백한데 더 이상 어떤 구체적인 사실이 있어야 하는가”라며 “당연히 구속될 것이라 믿은 우리가 순진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목소리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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