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사들이 미국의 이란 경제제재 탈퇴 후 현지 사정이 불안정해지면서 불똥을 맞고 있다. 사진은 현대건설이 준공한 이란 사우스파 4, 5단계 전경. <현대건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시아파 종주국으로서 국제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인 이란. 국내 건설사들에게도 이억만리 떨어진 중동의 핵심 국가 이란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존재다. 갈등 관계에 있는 서방국들과의 관계 개선 소식에 화색이 도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에는 행여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게 된다.

최근 사정이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란 순방을 계기로 업계 전체에 퍼졌던 장밋빛 전망이 잿빛으로 드리워지는 분위기다. 지난달 미국 트럼프 정부가 이란 핵 문제에 관해 주요국들이 공동대응하기로 한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 후 감지된 불길한 징조가 현실로 다가오는 모습이다.

그렇지 않아도 해외수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건설사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는 이란이 가진 힘은 무엇일까.

◇ 이란 경제제재 균열… ‘제 2중동붐’ 기대감에 찬물

2016년 박 전 대통령의 이란 순방 성과로 포장됐던 대림산업의 이란 이스파한 정규공장 개선 사업이 지난 1일 공식적으로 무산됐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들이 10년 만에 도출한 대이란 경제제재 해제 방안에 균열이 생기기 무섭게 이란 리스크가 재발했다. 현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면서 금융 조달이 원활히 되지 않은 탓이 컸다.

사정이 이쯤되자 다른 건설사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해외 수주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건설사들에게 ‘제2의 중동붐’을 몰고 올 신호탄으로 여겨졌던 수주의 이행 여부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이란 국영 정유회사와 3조8,000억 규모의 플랜트 공사 본 계약을 맺은 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이 금융 조달을 완료할 수 있을지 여부에 촉각이 곤두세워지고 있다.

또 1조7,000억 규모의 타브리즈 정유공장 현대화 사업을 포함한 2건의 본계약을 앞두고 있는 SK건설의 향후 행보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란발 위기 고조 소식에 일각에서는 국내 건설사들이 또 다시 해외 수주액 300억 달러 달성에 실패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국내 건설업계에 긴장감을 몰아넣고 있는 이란은 화제성에 비해 국내 건설사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실제로 크지 않은 편이다. 2017년(1위)을 제외하고는 지난 8년간 단 한 차례도 해외 수주 순위에서 20위 안에 들어서지 못했을 정도로 핵심 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2006년 1차 이란 경제제재 후 현지 진출이 어렵게 된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되는데,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국내 건설사들은 해외수주 전성기를 구가했다.

2010년 한해에만 716억달러를 수주하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후에도 4년 연속 600억달러를 오르내리며 지금의 2~3배에 가까운 성과를 이뤄냈다.

◇ 핵심 해외시장 아닌 이란?… 인구‧자원 투자 매력 가득

그렇다면 이란이 단일 국가로는 보기 드물게 국내 건설업계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기록으로 봤을 때 이란의 경제제재가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수주 침체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 것으로 나타남에도 매번 이란이 화제의 중심에서는 배경엔 어떤 게 있을까.

업계에서는 이란이 가진 잠재성에 주목한다. 이란이 가진 국가 인프라를 보면 이란은 국내 건설사들이 놓쳐서는 안 되는 시장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약 7.4배에 이르는 165만㎢의 광활한 영토와 8,000만의 인구만으로도 투자 매력을 엿볼 수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란 정부가 지방을 중심으로 서민용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것도 건설사들이 눈여겨봐야 할 이유로 꼽힌다. 테헤란시 건축물의 70% 가량이 개보수 및 재건이 필요할 정도로 노후화가 심각하다.

자원 부국이라는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이란은 석유 매장량(1,578억 배럴)이 세계 3위며, 천연가스 매장량(33.6조㎥)은 세계 2위이라 플랜트 등 공장 설비 수요가 잠재돼 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위치에 놓여있다는 점도 이란이 주요 해외 시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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