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와 58.3%. 두 곳의 여론조사 기관이 같은 날 발표한 A후보의 지지율이다. 조사기관에 따라 20%p 정도 차이가 난다. 유선전화·무선전화·안심번호 등 조사방법에 따른 편차도 제각각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여론조사 결과 하나하나에 희비가 엇갈리고, 뒤처지는 쪽에서는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헷갈리는 건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선거철만 되면 넘쳐나는 여론조사 결과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시사위크>는 현행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더 정확하고 공정한 여론조사를 위한 기획보도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비슷한 시기 MBC본사와 MBC경남이 각각 실시한 경남도지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김경수 후보의 지지율이 20%포인트나 차이를 보였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우리 정치사에서 여론조사가 물리적 힘을 발휘한 것은 200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과정에 여론조사 결과가 반영된 것이 시초다. 오늘날에는 보조적 기능을 넘어 각 정당 후보경선의 당락까지 좌우하는 등 중요한 정치적 제도로 자리매김했다.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의 의사를 판단할 객관적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여론조사 결과의 폭발력이 가장 극대화되는 시기는 ‘선거’다. 선거여론조사가 단순 민의확인 차원을 벗어나 일종의 ‘선거결과예측’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후보자들 입장에서는 여론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고, 여기에 맞춰 선거운동 전략을 수립한다. 여론조사를 토대로 한 선거결과 예측이 선거의 흐름을 바꾸고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 여론조사와 선거가 만나면

‘침묵의 나선 이론’과 ‘벤드왜건 효과’ 등의 이론으로도 설명된다. ‘침묵의 나선 이론’이란 다수의견과 동일하면 적극적으로 동조하나 소수일 경우 침묵하는 현상을 말한다. 밴드왜건 효과란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정보를 따라 상품을 구매하는 현상이다. 선거에 대입하면, 여론조사로 대세론을 형성해 표를 결집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대로 여론조사 결과가 좋지 않은 후보 지지자들은 위축되거나 최악의 경우 선거를 포기하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다. 예컨대 A후보의 지지율이 50%인데 B후보의 지지율이 20%로 보도될 경우, B후보의 지지자들은 선거결과가 뻔하다고 판단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여론조사가 여론을 왜곡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후보자들은 더욱 여론조사 결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야당 소속으로 서울시의원에 도전하는 한 후보자는 “참신한 정책을 내거나 목이 터져라 소리를 내는 것보다 지지율 몇 % 올랐다는 한 줄의 내용이 파급력이 더 크다”고 했다. 정책에 대한 논의 보다 지지율 1%라도 더 올릴 방안을 고민하는 게 선거판 현실이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오히려 왜곡하고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공천 및 경선 여론조사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뉴시스>

◇ 여론조사 악용한 선거운동 사례 여전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보니 이를 악용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따르면, 7회 지방선거 관련 여론조사 중 규정을 위반해 조치를 받은 것만 104건이다. 공표시 준수사항을 누락한 가벼운 사안도 있었지만, 여론조사결과를 왜곡하거나 조작한 건이 13건으로 10%에 달했다. 심지어 허위의 수치를 여론조사 결과인 것처럼 조작해 SNS 등으로 유포한 사례도 있었다.

여론조사를 가장한 선거운동 역시 가능하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를테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질문지를 구성해 수차례 여론조사를 돌리는 식이다. 물론 지난해 5월 실시된 여론조사 공표업체 등록제로 등록업체는 여심위의 엄격한 통제를 받기 때문에 이 같은 방식을 사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비공표를 전제로한 업체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방식의 조사가 가능하며, 이를 통해 공표업체의 정식 여론조사에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심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공표 등록업체와 비등록 업체 중 사전신고하는 업체 정도는 숫자를 파악하고 있는데 전체 여론조사 업체가 얼마나 되는지는 일부만 파악하고 있다”며 “언론사나 정당에서 의뢰하는 것은 사전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여론조사에 제한이 없고 자유로운 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여론조사 결과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론조사기관의 신뢰성을 제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유권자들의 분별력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전반적인 의식이나 선호 보다는 순간적 판단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이기재 한국방송통신대 정보통계학과 교수는 “조사기관이나 학계에서도 유권자에 대한 일종의 심층조사가 필요하다”며 “같은 전화조사라도 일반 RDD와 ARS 유형에 따라 (응답자들이)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이 있고, 어떤 선거냐에 따라 (응답이) 다르다. 이런 상황들은 (여론조사로) 전혀 알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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