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1 03:21
“국민에게 들이댔던 그 잣대, 양승태에 적용하라”
“국민에게 들이댔던 그 잣대, 양승태에 적용하라”
  • 조나리 기자
  • 승인 2018.06.1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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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농단사건 과거사 피해자 회원들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과거사 사건 원고·피해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전국의 판사들이 후속 조치 논의를 벌이는 가운데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1일 오전 10시부터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 모인 법관들은 사법농단에 대한 후속 조치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사법 처리를 두고 마라톤 회의를 벌이고 있다. 이날 300여명의 사법 피해자들도 사법연수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노동자, 시민, 국민에게 들이댔던 그 잣대를 양승태를 비롯한 농단 세력에게 그대로 적용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전교조는 해충” “한일 관계 회복”... 협조한 대법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은 비단 한 두 개가 아니다. 분야도 과거사, 기업, 노동, 금융사기, 정치사건 등 다방면에 퍼져있다. 사법 피해의 가장 큰 폐단은 막대한 피해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시간이 흐른 동안 누군가는 패소로 가정을 잃고 재산을 잃고, 심지어는 철도노조 조합원과 XTX 해고승무원은 대법원 판결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법원은 또 2012년 스스로 남긴 판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관심사였던 과거사 문제와 한일관계 회복 등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5년8개월이 되도록 끝을 내지 못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에는 청와대의 최대 관심사가 ‘한일 우호 관계의 복원’이라며 “일제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사건에 대해 기각 취지의 파기환송 기대”라고 적시돼 있다.

인권문제에 해당하는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청와대의 눈치를 본 것이다. 이에 대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자문위원 김정희 변호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이 사건에 대해 개입한 정황은 이미 드러난 것 같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취지대로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것”이라며 “아마도 2012년 대법원 판례를 뒤집을 만한 준비가 안 돼 있었거나 해당 사건 주심 판사가 양심상 사건을 미룬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근로정신대 피해자분들은 소송을 제기할 당시 연세가 80대였는데, 현재 90대를 봐라보고 계신다”면서 “특히 법관의 독립을 스스로 무너뜨린 양 전 대법원장은 직권남용은 물론 공무상 기밀누설죄 적용도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 철회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정부와 가장 대립각을 세운 집단은 노동계다. 그 중 철도노조와 민주노총과 함께 중심에 있던 단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다. 전교조는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법적지위가 무려 7번이나 바뀌었다. 전교조와 박근혜 정부의 갈등은 예견된 일이었다. 2005년 12월 15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사학법 개정 무효’를 촉구하는 시민 선전전을 하던 중 전교조를 ‘한 마리 해충’이라고 비유해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9명의 해고 교사들이 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아 하루아침에 법외 노조 통보를 받은 전교조는 이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다 34명의 교사들이 더 해고됐다. 전교조 측은 또 박근혜 정부 당시 전교조의 이미지가 ‘불법 집단’처럼 비춰진 점이 가장 큰 상처라고 말했다.

◇ “‘설마 사법부가 그러겠냐’ 했는데... 피해자들에 미안해”

조사위에서 공개한 사건 중 눈길을 끄는 사건도 있다. 바로 ‘키코’ 사건이다. 금융당국이 그동안 키코 사건 재조사 요구를 거부했던 근거는 대법원 판결이었다. 그러나 그 판결이 청와대와의 교감에 의한 것이란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중소 수출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키코 상품에 가입했다가 환율이 폭등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전국의 판사들이 11일 오전 10시부터 마지막 후속 조치 논의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당시 피해 기업들은 해당 사건을 금융 사기로 규정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판결이 엇갈렸지만 2013년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은행 측의 손을 들어줬다. 사건 초기부터 재판 과정을 지켜봐왔던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해당 사건이 대기업이 아니라서 의외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면서 “키코 사건은 이명박 정부 때 발생한 사건이지만, 박근혜 정부의 기조와도 맞물려 있다. 당시 금융사들이 정부의 창조경제 육성에 적극 나서던 때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게 가장 미안한 것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사법부와 정부의 짬짜미 의혹을 제기했던 피해자들에게 ‘설마 사법부가 그랬겠냐’고 말했던 것”이라며 “생각해보면 당시 ‘금융 4대천왕’들이 정부와 밀접한 관계였는데, 그때는 미처 이런 상황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법 피해자들은 현 정부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이전 정부 때 발생한 일이지만, 결국 현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들의 요구는 한결같다. 법외 노조 통보를 즉각 취소하고, 해고자를 전원 복직시키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지금까지 약속이행만 기다려 왔지만, 재판 거래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서 정부가 가만히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국 각급 법원 115명의 대표판사들은 현재까지도 논의를 진행 중에 있다. 대표판사들은 검찰 수사 필요성이나 재발방지 대책 등 총 4가지 의안을 논의 중으로, 다수결로 최종 결의문을 채택해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날 회의는 이번 사태의 후속조치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마지막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