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장자》 <제물편> 32장에 나오는 ‘나비의 꿈’ 이야기는 들어봤지? 먼저 그 부분을 오강남 교수의 번역으로 읽고 이야기하세. “어느 날 장주(莊周)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 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라 모르지는 않을 거야. 이 ‘나비의 꿈’때문에 장자를 흔히 ‘몽접주인(夢蝶主人)’이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이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네.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옳은 이해는 아닐세. 장자가 인생이 ‘한바탕의 봄 꿈’처럼 덧없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나비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장자는 나비와 자기 사이에 구별이 있지만 없는 상태, 그래서 나를 잃어버린 상태(吾喪我)가 되어야만, 실재의 세계를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세. 조금 쉽게 풀이하면, 이분법과 대립의 세계를 넘어 양방향으로 볼 수 있어야만 만물과 합일을 이루는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지.

갑자기 웬 장자의 꿈 이야기냐고? 이번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를 보니 저 꿈 이야기가 생각나더군. 아마 지금 우리 보수 정치인들은 자신들 앞에 주어진 선거성적표를 보고나서 다들 패닉 상태에 빠져 있을 걸세.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니 그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자기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누렸던 권력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거야.

이번 선거 결과에 관한 많은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여당의 압승과 보수의 궤멸’은 선거 전에 이미 예견된 것이었네. ‘이분법과 대립의 세계’에 매몰되어 변화를 거부했던 보수 정치인들만 모르고 있었어. 그들은 촛불혁명 이후 우리 사회가 급격하고 바뀌고 있다는 걸 몰랐거나, 알면서도 별거 아닌 것으로 무시하려고 했었던 사람들일세.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권력을 누렸던 사람들을 보게나. MB가 20 가지가 넘는 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되고,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1심 재판에서 징역 24년을 선고 받아도, 그들 중 ‘나도 책임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국회의원직을 내던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네. 반성하기는커녕 태극기부대 집회의 선봉에 섰던 인물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웠던 교만하고 후안무치한 사람들이었어.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지금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을 ‘정치쇼’라고만 비판하는 사람들, 자신들에게 불리한 여론조사는 무조건 조작이라고 떼를 쓰는 사람들,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시민이라면 누가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기고 싶겠는가?

지금 야권에서 정계개편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더군. 하지만 지금의 보수 세력들의 다수가 국민들의 지지를 다시 받기는 쉽지 않을 걸세. 지금 우리는 거대한 변화의 와중에 있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한 치 앞도 제대로 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어.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촛불 혁명 이후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중이냐. ‘미투’운동과 페미니즘의 거센 흐름이 우리 사회의 성별 권력구조와 가구 구성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있네. 그래서 이런 거대한 지각변동의 시대에 어울리는 보수의 가치를 정립하고,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함께 번영하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보수라야 이 땅에서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걸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집니다./ 온갖 것, 풀과 나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말라 뻣뻣해집니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사람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사람은 삶의 무리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일세. 무엇이든 유연성을 잃고 뻣뻣해지면 죽은 거나 다름없네. 찰스 다윈이 말했던 것처럼 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한 종이나 똑똑한 종이 아니고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네. 사람이든 정당이든 ‘이분법과 대립의 세계’에만 머물면 자유한국당처럼 ‘TK섬’에 갇히고 말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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