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무늬만 국산차’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무늬만 국산차. 국산차 브랜드가 해외에서 생산된 차량을 수입해 판매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내에 생산공장 및 합자법인을 둔 외국 자동차회사가 국내에서 생산된 차량이 아닌, 해외의 다른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을 가져와 판매하는 것을 뜻한다.

◇ 저렴하고, A/S 좋은 수입차… 치명적 약점도

‘무늬만 국산차’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 특징으로 꼽힌다. 우선,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차량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해외공장에서 생산된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끼거나 신뢰를 갖기도 한다. 여기에 국산차와 같은 수준의 A/S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이 같은 장점을 앞세운 ‘무늬만 국산차’로는 르노삼성자동차가 2014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QM3와 한국지엠이 2015년 선보인 임팔라가 있다.

QM3는 유럽에서 ‘캡처’라는 이름으로 판매 중이며, 소형SUV 시장에서 가장 높은 판매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인기 모델이다. 국내에서는 소형SUV 시장이 크게 형성되기 전에 출시돼 선두주자 역할을 했다.

임팔라는 미국 세단의 대명사로, 1957년 첫 출시 이래 10세대에 걸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2015년 국내 출시 당시 글로벌 누적판매 실적이 1,600만대에 이를 정도였다.

2015년 출시된 임팔라는 ‘무늬만 국산차’의 장단점을 모두 보여줬다. <한국지엠 제공>

QM3와 임팔라는 출시 초기 좋은 반응을 얻었다. QM3는 실용성과 감각적인 디자인을 앞세워 당시로선 생소했던 소형SUV 시장의 기반을 다졌다. 임팔라는 워낙 명성이 높았던 만큼 기대도 컸다. 하지만 QM3와 임팔라는 현재 깊은 부진에 빠져있다. QM3는 월간 판매실적이 500여대 수준으로, 국내 소형SUV 시장 꼴찌다. 임팔라는 월간 판매실적이 100여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부진의 배경엔 ‘무늬만 국산차’가 지닌 치명적 약점이 녹아있다. 먼저 물량공급 문제다. 기본적으로 바다 건너 들여오다 보니 적잖은 기간이 소요되고, 현지 판매물량이 상당한 탓에 수입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대기기간으로 인해 애초에 등을 돌리거나, 기다림에 지쳐 다른 차량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 자동차산업 측면에서 불편한 시선도 감수해야 한다. 국내공장 생산물량 문제는 여러모로 민감한 문제다. 때문에 수입방식으로 판매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도 상당하다. 수익만 노리는 외국 자동차회사가 국내유통망을 ‘수입기지화’에 활용한다는 비판이다. 특히 생존권과 직결된 노조는 ‘무늬만 국산차’를 강하게 반대한다. 회사 입장에선 판매실적이 너무 좋아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만큼 국내생산 요구가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임팔라는 이러한 두 가지 문제를 고스란히 노출하며 추락한 케이스다. ‘미국의 명차’답게 초기 반응은 뜨거웠고, 사전계약 단계부터 기대 이상의 실적을 냈다. 하지만 국내생산을 요구하는 노조와 큰 갈등을 빚었고, 수입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초반의 성공적인 분위기가 오래가지 못했다.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이 새롭게 선보인 클리오, 이쿼녹스는 모두 ‘무늬만 국산차’다.

◇ 새롭게 등장한 ‘무늬만 국산차’, 클리오·이쿼녹스 ‘주목’

이처럼 ‘무늬만 국산차’의 인기가 시들해진 가운데, 후발주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이 최근 각각 출시한 클리오, 이쿼녹스가 그 주인공이다.

국내 시장에서 나란히 판매부진을 겪고 있는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은 처방전으로 ‘무늬만 국산차’를 선택했다. 앞서 언급한 약점들로 인해 다소 부담은 있지만, 비교적 단기간에 판매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공략지점은 서로 다르다. 르노삼성의 클리오는 ‘소형 해치백’이란 특징을 앞세워 틈새시장을 노린다. 국내 소형차 시장이 침체돼있고, 특히 해치백은 국내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지만 역으로 이를 공략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 속에 초반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클리오다.

이쿼녹스는 쟁쟁한 경쟁차가 많은 중형SUV 시장에 뛰어든다. 경쟁차는 많지만 그만큼 시장이 크게 형성돼있고, 이쿼녹스의 경쟁력도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클리오와 이쿼녹스 모두 해외 시장에서 이미 성공하고, 인정받은 모델이다. 국내에서도 통할만한 충분한 상품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무늬만 국산차’로서 지니는 장단점을 얼마나 잘 제어하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초반엔 원활한 물량확보 여부가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등장한 ‘무늬만 국산차’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 다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클리오와 이쿼녹스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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