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수용 문제를 둘러싼 유럽과 미국의 내부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은 작년 8월 NGO가 지중해에서 난민들을 구출하는 모습.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지난 10일, 이탈리아가 난민 600여명을 태운 구조선의 입국을 거부한 것은 유럽의 반 난민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스페인이 난민구조선을 수용하기로 나서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난민정책을 둘러싼 유럽연합의 분열은 쉽게 봉합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민자가 살고 있는 나라인 미국 역시 전통적 가치와 미국 우선주의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 반 난민정서 확산된 유럽, 독일마저 후퇴하나

유럽의 난민사태가 본격화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이탈리아는 전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숫자의 이민자(33만5,000명)를 수용했다. 그러나 지난 3월 민주당의 집권을 5년 만에 끝내고 들어선 오성운동과 동맹당의 연립내각은 반 난민정책을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난민구조선의 입국거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내각의 또 다른 지향점인 유럽연합 탈퇴까지 현실화될 경우 이탈리아의 쇄국정책은 더욱 힘을 받게 된다.

2015년을 기점으로 지중해와 남동부유럽을 통해 유럽으로 망명하는 난민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불거진 유럽의 이민자 대란은 정치와 사회, 경제를 모두 아우르는 문제로 발전했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와 분쟁지역인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아프가니스탄·코소보·사하라 이남의 부족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유럽으로 향하고 있지만 경제적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이민자들을 반길 주민들은 많지 않다. 최근 다수의 국가들에서 우파정권이 득세하면서 인권과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유럽의 가치’도 이민자수용정책을 뒷받침할 힘을 잃어가고 있다.

유럽 이민자수용정책의 메카인 독일도 예외가 아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여전히 난민수용정책에 적극적인 모습이지만,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CDU)과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기독사회당(CSU)이 반기를 들었다. 기독사회당의 대표인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은 수 년 전부터 독일에 유입되는 난민의 숫자를 제한하는 ‘난민상한제’를 주장해왔다. 메르켈 총리는 이를 줄곧 거부해왔지만, 이번에는 기독사회당이 연정의 종료도 감수하며 강하게 나서고 있다. BBC는 메르켈 총리가 2주 안에 유럽연합의 국가들과 공동이민자정책을 마련하기로 내무장관과 합의했으며, 오는 6월 28일부터 29일까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이민자정책이 논의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일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144만4,000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였으며 이는 이탈리아보다 네 배 이상 많은 숫자다. 자연스레 이민자의 수용으로 인한 사회문제도 가장 크게 겪고 있다. 한국은행이 작년 9월 발표한 ‘독일 노동시장의 개선 현황 및 현안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에 망명을 신청한 난민 중 단 1.8%만이 독일어를 할 줄 알며, 첫 해 취업률은 8%로 일반이민자(20%)보다 훨씬 낮다. 경제적 지원에 따른 사회부담 증가와 치안 불안으로 반 난민정서가 확대되면서 극우정당(‘독일을 위한 대안’, AfD)이 일부 지역에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

◇ 트럼프, 영부인의 불법이민자 아동격리정책 반대에도 아랑곳 않아

이민자정책은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실리콘밸리와 백악관의 갈등을 낳았던 전문직 단기취업 비자(H-1B) 문제를 비롯한 이민자수용문제는 물론, 불법이민자에 대한 처우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따라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과 그에 대한 민주당의 반발은 미국의 이민정책을 보는 상반된 시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는 대통령 부부 사이에서도 이민자정책에 대한 마찰이 불거졌다. 17일(현지시각)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의 대변인 스테파니 그리샴은 “영부인은 이민자 자녀들이 부모와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기 싫어하며, 성공적인 이민자제도 개선을 위해 양당이 협력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법을 좇는 나라뿐 아니라 따뜻한 가슴에 의해 운영되는 나라도 필요하다고 믿는다”는 말도 있었다.

멜라니아 여사가 말하는 ‘보기 싫은 모습’은 미국의 불법이민자 부모·자녀 분리정책을 가리킨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천명한 ‘무관용 원칙’ 아래, 미국 국토안보부는 올해 4월부터 불법적으로 국경장벽을 넘다가 체포된 이민자 가족의 부모와 자녀를 분리해서 수감하기 시작했다. 부모는 연방감옥으로, 자녀는 난민재정착보호소(ORR)로 이송되는 방식이다. 어리게는 18개월짜리 아이도 있는 이 불법이민자 자녀들은 당국이 자신들을 받아줄 친인척을 찾아낼 때까지 수십일 동안 열악한 보호소에서 지내야 한다. 가디언은 올해 4월 19일부터 5월 31일까지 6주 동안 총 1,995명의 이민자 자녀들이 부모와 생이별했다고 보도했으며, 이민자옹호단체는 작년 7월부터 수감됐다가 부모와 이별하게 된 어린이들도 수백명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민간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미국의 불법이민자 수는 1,130만명으로 추산되며, 이 중 약 560만명이 멕시코 출신이다. 최근에는 멕시코의 불법이민자 유입이 줄어든 대신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서 밀입국하는 불법이민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영부인이 이민자제도의 개선을 요구한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이민자 캠프가 아니며, 난민수용시설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고 공개 발언해 현 제도를 완화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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