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이후 상반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6·13 지방선거 결과 진보진영이 보수진영보다 유의미한 존재감을 보였다는 것이 확인됐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지방선거 참패 후 당 쇄신을 위한 ‘탈이념’ 정당을 내세웠다. 기존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이념 정당에서 벗어나 경제·민생정당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소수자 인권 문제와 여성문제 등 진보적 의제를 내세워 약진한 진보진영은 가치 중심적인 행보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이후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행보가 분명하게 갈릴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이번 광역의원 비례대표(정당투표) 선거에서 10석을 확보했다. 이는 원내1·2정당인 더불어민주당(47석), 자유한국당(24석)에 이은 성적이다. 바른미래당은 4석, 민주평화당은 2석만을 확보했다.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정의당은 9석을 확보하면서 민주당(238석), 한국당(133석)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원내 의석수로 따지면 6석을 갖고 있는 정의당은 민주당(130석), 한국당(114석), 바른미래당(30석), 민주평화당(14석)에 이어 원내 5당에 불과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을 뛰어넘는 수준의 성과를 낸 것이다.

원외 진보정당인 녹색당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는 8만2,874표를 득표해 1.7% 득표율로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고은영 제주지사 후보는 한국당 후보를 제치고 3.53%로 3위를 기록했다. 신 후보의 ‘페미니스트’ 슬로건과 고 후보가 내세운 환경보호·난민의제 등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분석이다.

진보정당은 이번 지방선거 성과를 바탕으로 ‘진보적 의제’ 관련 구상에 더 힘쓰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20일 “제1야당 교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정의당을 여성 청년 비정규직 등 일하는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 속에 뿌리내려야 한다”며 “일하는 사람과 사회경제적 약자가 배제된, ‘얼굴 없는 한국 민주주의’를 바꾸겠다는 포부와 구상을 더욱 정교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신지예 후보도 낙선 인사를 통해 “저는 오늘 낙선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 페미니스트 정치의 시작점은 제로가 아니라 1.7%이기 때문”이라며 “2018년 지방선거는 페미니즘 정치의 용감한 첫걸음이다. 사랑이 혐오를 이길 것이다. 뜨거운 연대의 정신이 차별을 무너뜨릴 것이다. 다시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보수진영은 이념 색채를 뺀 탈이념 행보를 걷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19일과 20일 양일간 워크숍을 갖고 ‘탈이념 민생정당’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했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워크숍 결과 브리핑에서 “이념과 진영이 아니라 정책으로 말하고 실천하겠다”며 “(워크숍에서는) 자꾸 보수니 진보니 중도니 따지지 말자는 내용이 논의됐다. 우리는 진보-보수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실용정당, 민생 우선, 미래개혁을 우선하는 정당”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당도 정치적 이념 프레임을 거부하기로 했다. 김성태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은 당 노선을 논의하는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처절하게 당을 쇄신해 경제중심 정당으로 거듭 태어나겠다"며 "수구 냉전세력으로 비치는 부분을 혁신하고 보수·진보의 프레임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겠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기조인 소득주도성장과 한반도 평화 등 ‘진보적’ 가치를 중심으로 정국을 운영해나갈 방침이다. 민주당·정부·청와대는 이날 고위 당정청 협의를 통해 ‘판문점 선언’의 철저한 이행과 북미정상회담 결과 후속조치를 위주로 한 대북정책,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경제적 현안을 논의했다.

이처럼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진보진영에 압도적인 힘을 실어주면서 진보진영에 불리한 정치적 지형을 일컫는 수사로 많이 이용됐던 ‘기울어진 운동장’의 의미도 뒤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신지예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진보에 기울어진 운동장’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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