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출중소기업의 성장세는 키코 사태 이후 정체된 모습이다. 사진은 지난 2012년 키코 재수사 촉구 시위에서 사용됐던 피켓.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수출기업들이 환 리스크를 헷지하기 위해 가입했던 금융상품 키코(KIKO)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수백·수천억 규모의 피해로 돌아왔다. 사단법인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는 최근 키코 사태 후 한국의 수출중소기업들의 경제활동이 얼마나 위축됐는지를 다룬 논문 ‘키코의 경제학’을 발표했다. 키코 사태 후 침체된 중소기업의 수출실적과 일자리 피해가 두드러졌다.

◇ 정체된 중소기업의 수출실적

한국 수출업계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 꾸준히 낮아지고 있었다. 2001년 43%였던 중소기업의 수출액 비중은 2008년 31%로 낮아졌다. 연평균 1.7%p씩 낮아진 셈이다.

그러나 이를 중소기업의 부진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008년까지 중소기업의 수출비중이 낮아진 것은 동기간 국내 대기업의 수출실적이 3.4배 증가했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수출액은 2001년 646억달러에서 2008년 1,305억2,400만달러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고 키코 사태가 불거진 2009년, 중소기업의 연간 수출액은 767억8,200만달러로 떨어졌으며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1%로 급감했다. 다만 여기에는 금융위기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 양분됐던 수출통계가 2009년부터 중소·중견·대기업으로 세분화된 영향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중소기업의 수출규모가 현재까지도 1,000억달러 선에서 정체돼있다는 것은 국내 수출중소기업의 성장 동력에 큰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2009년 이후 9년간 중소기업의 수출실적은 단 1.4배 늘어나는데 그쳤다. 대기업 수출액이 2009년 2,282억7,500만달러에서 2010년 3,000억달러, 2011년 3,700억달러로 빠르게 부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2009년 이후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출액 동향. 흰색 글씨는 전체 수출액 중 중소기업의 비중. <그래프=시사위크>

◇ 일자리 타격, 서울·경기지역에서 심해

은행으로부터 키코 상품을 구매한 국내 수출중소기업들의 분포를 지역별로 나눠보면, 기업과 은행점포가 밀집해있는 서울·경기지역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서울 지역 중소기업이 27.3%로 가장 많고 경기도가 23.9%로 뒤를 잇는다. 이 지역의 수출중소기업들은 2009년 이후로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감한다.

2007년 서울지역 총 수출액 중 중소기업의 비중은 78.9%, 2008년에는 69.3%였지만 2009년에는 19.9%로 급감한다. 보고서가 ‘자유낙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표현한 서울지역 수출중소기업들의 실적은 아직까지도 회복되고 있지 않다. 지난 2016년의 서울지역 수출액 중 중소기업의 비중은 16.7%에 불과하다.

두 번째로 키코 판매비중이 높았던 경기도에서도 중소기업이 지역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뚝 떨어졌다. 2007년 46.5%, 2008년 75.8%였던 경기도 중소기업의 수출비중은 2009년에 21.54%로 급감했다. 그나마 2016년엔 34.45%로 소폭 개선된 것이 위안거리다.

지난 2010년 8월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471개 피해기업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키코 사태로 실업 위기에 놓인 근로자가 6만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는 해당 조사결과에 피해기업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던 하청기업들을 포함시키고, 2018년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확인된 키코 피해기업 수는 총 919개로 2010년 조사보다 두 배 가량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숫자가 17만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300인 이하의 중소기업 뿐 아니라 종사자가 1,000명을 넘는 중견기업들도 일부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바탕으로 키코 사태로 인한 일자리 피해 규모를 3년간 20만5,592명, 5년간 34만1,912명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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