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지방선거가 끝나고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 “지역으로 국민을 나누는 지역주의 정치, 색깔론으로 국민을 편 가르는 분열의 정치는 이제 끝났다. 지역주의 정치, 분열의 정치구도 속에서 기득권을 지켜나가는 정치도 이제는 계속될 수 없게 됐다.” 누구보다 언행이 무겁고 신중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보수’라고 불렸던 한 정치세력의 사망선고를 내린 셈이다.
자신감의 바탕은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이었다. 촛불혁명에서 시작된 정치변화의 열망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타고 지방선거에서 폭발했다. 이로써 민주당은 중앙권력뿐만 아니라 지방권력, 나아가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등 지역사회 풀뿌리 민주주의까지 장악하게 됐다. 예상했던 것 이상의 결과였다.
싱거운 결과와 달리 선거는 치열하게 진행됐다. 네거티브, 색깔론, 지역주의, 심판론 등 선거승리를 위한 모든 기재가 동원됐다. 지방선거만 따로 떼놓고 보면 한국당 보다 민주당에 악재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미투사건을 포함해 몇몇 후보자의 성범죄 의혹이 있었고, 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자가 연루된 이른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도 터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자에게는 막판 여배우 스캔들이 불거졌다. 그럼에도 표심은 움직이지 않았다.
◇ 보수의 ‘시대착오’에 대한 단죄
한국당을 포함한 야권의 선거패배 이유는 다양하지만, 종국적으로는 ‘시대착오’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지지층의 한 켠에서는 이미 지나간 박근혜 전 대통령 시대를 붙들고 있고, 대북정책에 있어서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민심 흐름을 전혀 읽지 못했다. 민주당에 부정적인 유권자조차 한국당 등 야권에 선뜻 한 표를 행사하기 어려웠다.
민주연구원은 이를 8의 메이저리그와 2의 마이너리그로 나눠진 ‘두 개의 운동장’이라고 설명한다. 기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찬반 여론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다. 둘은 아예 다른 운동장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운동장에서 경쟁했던 이전과 다른 흐름이 나타난다. 즉 메이저리그의 비주류가 마이너리그의 ‘표’로 가지 않는 디커플링 현상이다.
이진복 박사는 “촛불혁명과 한반도평화의 정치충격은 보수 대 진보 진영론의 낡은 고정관념을 멸종시키는 정치적 ‘유성충돌’이었다”며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탄핵찬성 또는 한반도평화 긍정평가 80의 1부 리그와 탄핵반대 또는 부정평가 20의 2부 리그로 분리된 ‘두 개의 운동장’으로 전환됐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현 중심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이 독주해서는 유권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두 담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촛불혁명 1주년 기념행사가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각각 열렸다는 게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른바 ‘미투사건’이 주로 민주진영 인사들에게 나타났다는 점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도 있다. 정당은 민심을 담는 그릇이고, 유권자의 다양한 목소리가 담길 때 정치는 더욱 건강하고 발전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차재원 부산대학교 초빙교수는 “보수 진보를 떠나 정치가 세력 간 균형이 이뤄져야 생산적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현 구도에서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틀 자체를 해체하고 완전히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면 새로운 정치세력과 함께 판이 짜여질 수 있다. 그러나 국민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일시적 처방으로는 정치적 혼란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민주당이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고는 하나 향후 한국 정치를 이끌어갈 주체라는 데 주저하는 국민이 많다. 한국당 등 보수세력이 지방선거로 사망선고를 받은 이상, 한국정치의 주류세력을 대폭 교체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