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각 26일 새벽,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터키의 경제부흥을 위해 다양한 인프라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한편, 자국의 반대파 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중이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한국시각 26일 새벽, 터키 대선의 투표결과가 공개됐다. 2014년 시행된 터키의 첫 직선제 투표에서 당선됐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52.5%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가 당수를 맡고 있는 정의개발당(AKF)도 민족주의행동당(MHP)과의 연대를 통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작년 4월 열린 국민투표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개정헌법이 통과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었다. 이제 터키의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할 권리를 가지며 국회의원 600인 중 360인 이상의 동의가 없다면 범죄행위로 인한 수사도 받지 않는다. 판검사위원회 13인 중 4명을 직권으로 임명하는데, 법무부 장관과 차관도 당연직으로 포함되기 때문에 사실상 6인을 임명하는 셈이다. 여기에 국회가 행정부를 감사할 권한도 삭제됐다.

최대 2033년까지 장기집권도 가능해진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력은 이제 옛 오스만 제국의 술탄에 비견되고 있다. FTA를 맺은 무역 분야는 물론 믹타(MIKTA)와 G20 등의 국제협력기구에서 터키와 만나고 있는 한국은 이제 ‘에르도안의 터키’와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 수주 통한 경제협력 가능

‘비전 2023’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계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정책이다. 여기에는 터키공화국이 수립 100주년을 맞는 2023년까지 GDP를 2조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담겨있으며, 이를 위해 대규모의 에너지·교통인프라 건설계획이 예정돼있다. 1만1,000킬로미터의 고속철도와 1만5,000킬로미터의 간선도로, 그리고 2만 메가와트 규모의 풍력발전소가 그 예시다. 약 20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이스탄불운하 건설사업과 3층짜리 해저터널을 건설하는 등의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도 있다.

한국은 이미 터키의 인프라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보스포러스 제3대교와 차나칼레 대교, 유라시아 해저터널은 모두 한국 건설사에 의해 수주·시공됐다. 에르도안은 지난 5월 초 한국을 찾아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며 양자 및 국제기구에서의 다자간 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 반대파 탄압에 서방세계와도 관계 좋지 않아

한국과 터키의 경제협력은 양국의 이해관계는 물론 프로젝트 수주 경험, 그리고 ‘형제의 나라’라는 국민정서까지 모든 조건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행보는 치명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2016년 군부의 쿠데타가 미수에 그친 후 에르도안 행정부는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인사들을 강하게 탄압하고 있다. 주 타깃은 판사·검사·교사·언론인 등의 지식인계층이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터키는 180개의 언론사가 문을 닫았으며 구금된 기자와 언론인은 120명이 넘는다. 평화를 호소하다가 기소된 학자 265명을 포함해 형사소송 절차에 휘말린 사람만 10만명이다. 공권력에 의한 반인권적 탄압이 자행되고 있는 현지사정을 모른척한 채 경제협력만 강화하다간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이미 에르도안에게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사치품과 술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공공장소에서 히잡의 착용을 허용하는 등 이슬람 친화적 정책들을 펴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반 터키 정서가 강화되자 터키가 수용하고 있는 난민들을 유럽으로 보내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터키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은 따로 있다. 미국과 사이가 좋지 못한 것으론 원조격인 러시아와 이란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 사태와 IS 퇴치 문제 등에서 푸틴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며 정치·경제·군사 분야의 협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5일(현지시각) 두 정상이 에르도안의 재선을 축하하는 전화통화에서 양국의 교류를 강화하는 방안을 심도 깊게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러시아와 활발하게 경제협력을 논의하고 있는 한국으로선 터키를 포함한 3자 교류도 시도해봄직하다. 다만 한국과 터키의 경제협력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미국의 불편한 관계, 그리고 자국민 탄압 문제 때문에 상당히 신중하게 진행돼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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