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을 조사 중인 검찰이 법원행정처가 증거 자료를 놓고 대치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을 조사 중인 검찰이 ‘하드디스크’를 놓고 법원행정처와 대치하고 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진실을 규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성이 인정되는 자료들을 제공했다고 맞서고 있다.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장과 달리 초반부터 검찰과 법원이 긴장감을 형성하는 모습이다. 다만 이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는 사실상 법원이 강제수사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고 있다.

◇ 법원행정처가 검찰에 제공한 자료 무엇?

지난 19일 검찰은 법원행정처에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법원행정처는 1주일만인 지난 26일 서울중앙지검에 일부 자료를 임의제출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가 제출한 자료는 이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조사했던 범위 내로 한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는 조사단이 다뤘던 자료 중 410개 파일 원본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4명의 저장매체(HDD·SSD)에서 이를 추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포렌식 자료를 제출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임종한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 등이 사용한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없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410건의 문서는 이미 대법원이 자체조사한 저장매체(HDD·SSD) 5개를 기준으로 했을 때 0.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포렌식 자료 또한 법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재차 자료 제출을 압박했다. 포렌식을 통해 추출된 문건의 경우 당사자가 작성했다고 인정하지 않는 이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반면 법원행정처는 제출한 자료는 이미 다 제출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법원 내부 민감한 정보나 고위 법관들의 개인신상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도 어렵다는 뜻도 내비쳤다. 자칫 제출 행위 자체가 공무상 비밀 누설과 개인정보호보법 위반 등의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이후에도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수사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는 사실상 법원행정처가 강제수사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원노조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결국 검찰한테 압수수색을 하라는 것 아니겠냐”면서 “나중에 임의제출 한 자료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문제에 휘말릴 수 있으니 명분을 가져오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법원에서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난번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에서 그런 느낌은 받지 않았다”면서 “형식적인 대화가 오가긴 했지만, 사안을 가볍게 다루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명수(왼쪽) 대법원장 취임 한달 후인 지난해 10월 양승태(오른쪽) 전 대법원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삭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뉴시스>

◇ 양승태 PC ‘디가우징’ 논란... 불똥 어디까지 튈까

문제는 이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 등 주요 인사의 컴퓨터가 ‘디가우징’(하드디스크 등을 복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자료를 전달하면서 이같은 사실을 알려왔다며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 만큼 경위를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컴퓨터가 디가우징된 시점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컴퓨터 저장장치는 지난해 10월 삭제됐다. 이는 김명수 현 대법원장이 취임하고 한 달이 지난 시점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대법관 이상의 경우 퇴직 시 하드디스크를 폐기처분하는 것이 원칙이고, 통상적 절차에 따라 폐기하라고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시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2차 조사를 직접 지시했었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가 미흡했다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던 때였다. 때문에 증거인멸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5월 31일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에 진정서를 제출한 투기자본센터 윤영대 공동대표는 “엄밀히 따지면 김명수 현 대법원장도 이 모든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이 있던 사건 담당 판사들이 모두 승진하거나 여전히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진정서에도 이같은 문제들을 개선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면서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물론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PC가 디가우징 됐다는 사실만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법원노조 관계자는 “대법관 퇴임 후 하드디스크를 폐기한다는 것을 직접 들어본 적 없다”면서도 “관행이든 내규든 관련 내용을 확인해봐야 알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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