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종교나 양심을 이유로 군복무를 거부한 이들을 위해 대체복무를 마련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다만 입영거부에 대한 처벌 조항은 기존과 같이 합헌으로 판단됐다. 그러나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향후 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형사처벌 선고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 “헌법불합치” “합헌” 둘 다 내려진 병역법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1항이 재판관 6(헌법불합치)대 3(각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이 선고됐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19년 12월31일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이는 그간 1만9,000여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은 끝에 내려진 결정이다.

28일 헌재는 “병역종류에 대한 대체복무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형사처벌을 부과 받음으로써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받아 왔다”면서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반영하는 것은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을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앞서 2011년 헌재 결정 근거를 완전히 뒤집은 내용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형사처벌에 대한 첫 위헌심판이 열렸던 2004년,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대체복무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2011년에는 “대체복무 허용 시 병역자원 확보, 국가안보 등의 공익을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 할 수 없다”고 못 박으며 대체복무 도입 자체를 차단했다.

7년이 지난 이날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공익 관련 업무에 종사한다면 이들을 교도소에 수용하는 것보다 넒은 의미의 안보와 공익실현에 더 유익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국가와 사회의 통합, 다양성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고 판시했다.

◇ 대법원, 1968년 이후 첫 입장 변화 나올까

다만 헌재는 현역 입영 통지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역을 거부할 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 병역법 88조 제1항 제1호와 제2호에 대해서는 합헌을 선고했다. 때문에 대체복무를 포함하는 병역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형사처벌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일은 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공익적 가치와 비교할 때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없다”면서 “처벌 조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병역기피자를 처벌하는 조항으로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헌재는 대체복무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불합치하는 만큼,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에서 말하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헌재는 “현재 대법원 판례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면서 “대체복무가 규정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양심적 병영거부자들의 입영거부가 병역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봐야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향후 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는 8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공개변론을 진행할 방침이다.

◇ 변화 조짐 보였던 헌재?

과거 보수 정권 9년 동안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사건을 방치하다시피 했다. 이에 이번 헌재 판결을 두고 정권 교체 후 두 기관 구성원들의 변화와 평창올림픽과 함께 개선된 남북관계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1968년 7월 종교적인 이유로 군복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 다며 병역 거부자에 대해 처벌 확정 판결을 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 판결을 근거로 기소돼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왔다.

그러다 2004년 대법원은 30여년 만에 다시 한 번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유죄판결을 확정지었다. 헌재도 같은해 8월과 2011년 8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처벌을 규정한 병역법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이번 헌재 결정도 결과는 같았지만 과거에서처럼 합헌 결정이 압도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2004년과 2011년 헌재는 모두 합헌 7명, 위헌 2명에 따라 합헌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날 헌재는 합헌 4명, 일부위헌 4명, 각하 1명 등으로 나뉘었다. 위헌결정을 받기 위해선 9명의 헌법재판관 중 6명 이상이 위헌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같은 헌재의 전향적인 결정에 따라 오는 8월 열릴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국방부는 헌재의 결정이 선고된 직후 입장문을 내고 “그간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없고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체복무 방안을 검토해왔다”면서 “정책결정 및 입법과정을 거쳐 최단시간 내 정책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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