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7 19:07 (월)
[김재필 '에세이'] H에게- 민주주의 개념 확장이 시급한 이유
[김재필 '에세이'] H에게- 민주주의 개념 확장이 시급한 이유
  • 시사위크
  • 승인 2018.06.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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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지난 22일 교육부가 제시한 2020년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빠진 것에 대해 보수 진영의 반발이 심하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최근 문재인 정부는 자유대한민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바꾸는 것이 아니냐는 국민들 우려가 크다"며 "대통령 지지율이 높고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했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가 국가 기조까지 마음대로 바꾸라고 권한을 준 것은 아니다”라고 철 지난 이념 공세를 퍼붓더군. 같은 당의 혁신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준비위원장으로 임명된 사람도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는 것은 대한민국을 사회주의화 하려는 술책이라는 일부 보수주의자들의 인식에 동의한다고 말했고.

아직도 ‘민주주의’보다는 ‘자유민주주의’를 숭배하는 사람들을 보니 김남주 시인의 <각주 脚註> 가 생각나더군. 헤겔과 마르크스처럼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자들의‘자유’ 개념을 쉽게 설명한 시라고나 할까? 먼저 함께 읽어보세.

“헤겔은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동방에서는 한 사람만이 자유로왔는데 지금도 그렇다/ 그리스 로마에서는 몇 사람이 자유로왔다/ 게르만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다// 마르크스는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시아적 봉건사회에서는 한 사람만이 자유로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몇 사람이 자유롭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만인이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나 헤겔도 마르크스도/ 다음과 같이 각주 붙이는 것을 잊어 버렸다// 식민지 사회에서는/ 단 한 사람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간단히 말하면, 헤겔은 정치적 자유를, 그리고 마르크스는 경제적 자유를 강조했었네. 19세기 초에 활동했던 헤겔은 역사의 발전 단계를 한 사람만 자유로운 절대군주제의 아시아적 단계, 노예가 아닌 평민들에게만 자유가 허용된 고대 그리스-로마시대, 그리고 위 두 문명을 혼합하여 강력한 국가와 개인의 자유를 통합한 독일-유럽의 시대로 구분하지. 사실 보수적인 자유주의자라고 분류될 수 있는 헤겔의 주장에는 문제도 많아. 강력한 국가를 유지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거든. 그리고 헤겔이 살았던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자유로웠던 개인들’이 전체 유럽 인구 중 얼마나 되었는지도 의문일세.

반면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유는 이른바‘자본’의 지배로부터의 자유일세. 아시아적 봉건사회에서는 황제나 왕이 모든 재산을 독차지했던 왕조국가이니 절대군주만 ‘돈’으로부터 자유로웠어. 그러다가 근대에 들어 자본주의가 확장되면서 자본가들만 자유로워졌고.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근대 시민계급’이 바로 부르주아지, 즉 자본가계급이야.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자본만이 자유롭지. 그래서 마르크스는 사유재산과 국가가 사라지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만 만인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던 거야. 물론 20세기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소련 같은 나라는 마르크스가 꿈꿨던 이상형과는 너무 동떨어진 전체주의 사회였지만…

그런데 시인은 헤겔이나 마르크스가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사회가 존재한다고 말하네. 시인은 1980년대의 대한민국을 ‘식민지 사회’로 규정하면서 그런 사회에서는 “단 한 사람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하고 있네. 너무 과격하다고? 물론 우리나라를 완벽한 독립국가로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기분 나쁜 소리도 들리겠지. 나 역시 1980년대는 몰라도 지금은 만방에 떳떳하게 독립국가임을 자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길 바라고 있으니까. 하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갖고 있는 현실이나 북미 핵협상의 진행 과정을 보고 있으면, 과연 우리가 독립국가에서 살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일세. 세상에 어떤 ‘독립’ 국가가 자기의 운명을 다른 나라의 손에 맡기겠는가? 이런 나라에서 살면서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유’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답답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현실일세.

​사정이 이런데도 왜 우리 보수세력은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를 뺀다고 펄펄 뛸까? 그들이‘자유’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세.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는 자유주의라는 이념이야.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율성, 존엄성, 사생활을 존중하고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의 다른 이름이지.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이 사회나 국가보다 우선한다고 믿어. 서양에서 16~18세기에 걸쳐 형성된 자유주의는 근대사회 발전의 주역이었던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반영했던 이념이기도 하지. 자연권 사상에 기초한 생명, 사유재산권, 입헌주의, 법치주의, 최소국가 등이 핵심 가치들이야.

그러면 ‘자유’를 강조하는 우리 보수 진영이 그런 가치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우리 근현대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아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걸세. 그들에게 ‘자유’란 반공, 재벌의 이익, 경쟁 옹호의 다른 이름일 뿐이야. 민주주의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공을 ‘국시’로 국민 모두가 재벌과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대한민국을 영원히 보존하겠다는 술책이지. 사실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이념에서도 크게 벗어나 있네. 한국적 특수성 운운하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독재’를 합리화했던 박정희 시대의 낡은 유산일 뿐이야. 생태, 복지, 인권, 기본소득 등 앞으로 우리 사회가 확장시켜야 할 가치들이 많네. 그런 가치들을 공적 사적 영역에서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개념의 확장이 시급한 과제일세. 그래야 소수가 아닌 다수가 자유로운 세상이 열리는 거지. 국가나 자본만의 자유를 넘어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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