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첫째주 일요일에 여성들이 소비를 하지 않는 '여성소비총파업'이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로고=공식 페이스북>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여성들이 소비와 지출을 중단하는 ‘여성소비총파업’이 지난 1일 시작됐다. 여성의 꾸밈을 강요하거나 육아와 가사일을 전담하는 여성, 남자친구에게 가방을 사달라고 조르는 여성 등 시대착오적이고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상업광고에 경각심을 주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그간 논란에 휩싸일 때마다 ‘노이즈 마케팅’ 쯤으로 치부해왔던 기업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여성소비총파업, 기업들에 대한 강력한 의사표시”

SNS를 중심으로 시작된 ‘여성소비총파업’은 매월 첫째주 일요일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소비를 하지 않는 운동이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본인이 매일 찾는 공공장소에서 여성소비총파업을 소개하는 포스트잇 붙이기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여성소비총파업 공식 SNS에는 “매월 첫째주 일요일에 매출이 급감한다면 기업들 역시 원인을 찾을 것”이라며 “또한 여성 구매자들의 영향력을 재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총파업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 운동이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일 뿐,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야기하고자 하는 운동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성차별 CF는 수년 전부터 문제돼왔다. 2015년 KFC는 ‘자기야 나 기분전환 겸 빽(가방) 하나만 사줘’라는 문구의 광고물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논란이 된 바 있다. 같은해 삼성전자의 지펠 아삭 김치냉장고 광고 역시 할머니가 김장을 하는 모습 이후 어머니가, 또 옆에서 딸이 이를 배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나마 광고에 한 번 등장하는 남성은 여성이 만든 김치를 받아먹고만 있었다.

2016년에도 애경이 주방세제 ‘트리오’ 출시 50주년을 기념에 만든 광고 영상이 성차별 논란으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광고 내용만 보면 50년이 흐르는 동안 엄마만 주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비씨카드가 선보인 대만 음료업체 ‘공차’ 광고에서도 만화 속 여성이 “공차 가기 전에 비씨페이(BC Pay) 등록해야 겠네”라고 말하자 남성이 “어차피 계산은 내가 하는데...”라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비씨카드도 결국 광고를 내렸다.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양성평등진흥원이 지난 4월 TV(공중파/케이블)와 인터넷, 극장 등을 통해 방영된 국내 광고 457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차별적 광고 수는 총 36편으로, 성평등적 광고(17편)보다 약 2배 이상 많았다.

등장인물 502명 중 일하는 역할은 남성이 63.8%(30명)인 반면 여성은 36.2%(17명)에 그쳤다. 운전자 역할도 남성 78.6%(11명), 여성 21.4%(3명)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육아와 가사노동역할은 여성 59.2%(16명), 남성 40.8%(11명)로 여성이 더욱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왼쪽 위에서 아래로)전자제품을 보고 곧바로 충동구매를 하겠다고 하는 여성에게 경영을 배운 남성이 제지하고 있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쇼핑 후 운전을 하고 있던 여성이 갑자기 사고를 내자 앞 차량 남성이 여성의 외모를 보고 용서해주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고정된 성역할을 보여주는 광고들은 그간 늘 해왔던 패턴으로 편하게 가겠다는, 그래서 너무나 게으른 결과물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면서 “나아가 여성을 타깃으로 하면서 그런 광고들을 만드는 것을 보면 과연 지금의 시대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들이 어떤 제품이나 특정 기업에 대해 보이콧하는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주 소비층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기업에 대한 강력한 의사표시”라면서 “기업에서도 대충 넘길 것이 아닌 경각심을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할리우드에서 건너온 ‘미투’, 총파업은 어디서?

지난 3월 8일 스페인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들이 성 불평등 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해 24시간 동안 총파업을 벌인 바 있다. 여성소비총파업 공식 SNS에서도 이번 운동이 1975년 10월 24일 아이슬란드에서 벌어진 여성 총파업이 모티브라고 소개하고 있다. 당시 아이슬란드에서는 직장에 다니는 여성은 물론 무급 가사노동에 저항하기 위한 여성 총파업이 일어났다.

여성의 90%가 총파업에 참여했던 이 사건은 여성이 당연히 맡았던 역할들과 경제적 영향력에 대해 국민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5년뒤인 1980년 아이슬란드는 첫 여성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세계 최초로 여성과 남성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제화해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시작된 여성소비총파업은 여성 노동운동이 소비자 운동과 만난 사례다. 다만 소비 운동뿐 아니라 현재 직면해 있는 다양한 여성 문제들에도 목소리를 내고 연대할 필요성도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6년 여성가족부와 함께 ‘대중매체 남녀차별 모니터링 및 개선활동’ 사업을 진행한 여성청소년미디어협회 이영미 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성차별적 상업광고는 우리 사회 여성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취업시장과 임금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고, 정치·경제 분야에도 고위직 여성이 부족한 현실이다. 이같은 문제들이 해결돼야 지금과 같은 상업광고들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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