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현지시각) 멕시코 대통령으로 선출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국가재건운동(MORENA)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신화>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1일(현지시각) 치러진 멕시코 대선에서 국가재건운동(MORENA)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가 53%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멕시코에 89년 만에 탄생한 좌파 정부다.

오는 12월 1일 취임하는 오브라도르 앞에는 많은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멕시코의 엘리트계급을 컨트롤하는 동시에 부패·마피아와의 전쟁도 벌여야 한다. 무엇보다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 시급하다. 작년 멕시코는 경제성장률이 2.1%에 그친 반면 물가상승률은 6.77%에 달했다. OECD에서 가장 심한 빈부격차, 그리고 미국과의 통상마찰 해결이 당면과제다.

◇ 파격적인 복지정책, 온건한 행보

멕시코의 새 대통령에겐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대개 좌파 포퓰리스트로 분류되는 그에겐 민족주의자·권위주의자로서의 일면도 있다. 실용주의자라는 평가와 이상주의자라는 냉소도 함께 받는 중이다. “그는 당신의 어떤 정치적 은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 제목은 오브라도르의 이런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오브라도르 당선인의 정책 중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복지제도다. 멕시코시티 시장을 역임하며 노령연금을 도입하고 16개의 고등학교를 지었던 오브라도르는 대선 공약으로도 최저임금과 노령연금 수령액 인상 등의 사회보장제도 확대 정책을 내걸었다. 문제는 이 목표들을 세금 인상과 재정적자 없이 달성하겠다는 호언장담의 신뢰성이다. 오브라도르 당선인은 반부패 캠페인과 고위공무원의 연봉 삭감을 통해 재원을 확충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진 액수가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일부 비판론자들이 오브라도르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에 비유하는 이유다.

다만 오브라도르가 차베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오브라도르는 군인 출신이 아니며 정치 경험도 풍부하다. 무엇보다 오브라도르는 통신 재벌인 카를로스 슬림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억만장자 알폰소 로모를 경제 참모로 채용하는 등 자국 기업가들을 포섭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단어로 설명될 수 없는 인물답게 유연성을 발휘한 셈이다.

◇ ‘상극’ 트럼프와 오브라도르의 화기애애한 첫 인사

멕시코와 미국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여전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개정 협상이 진행 중이며,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할 경우 경제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 경제통계사이트 OEC에 따르면 멕시코는 지난 2016년 전체 수출실적의 74%(2,900억달러)를 미국에서 올렸으며, 수입액은 1,800억달러 수준이었다. 특히 관세의 범위를 철강과 알루미늄에서 자동차로 넓히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멕시코에게 치명적이다. 멕시코의 대미 수출 카탈로그에서 승용차(237억달러)와 자동차부품(227억달러), 운송용 트럭(219억달러) 등 자동차 제품들이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또는 멕시코를 거쳐 밀입국하는 중남미의 불법이민자들도 핵심 쟁점이다. 오브라도르 당선인은 이미 이민자보호정책을 펴겠다고 예고했다. “이민은 필요가 아니라 열망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는 그의 말은 멕시코의 열악한 경제상황을 개선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삶을 위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긍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히 최근 수년간 미국보다도 많은 숫자의 이민자들을 추방해왔던 멕시코의 정책기조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오브라도르 당선인은 대선 토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자 강경책을 “더러운 일”이라고 부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브라도르의 당선이 확정된 후 트위터를 통해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불과 1년 반 전 트럼프를 “거만하고 권위주의적인 인물”이라고 불렀던 오브라도르 역시 “존중에 감사하며, 앞으로 미국과의 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화답했다.

멕시코는 이미 미국의 철강과 농축산물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양국은 선거 때문에 한동안 중단됐던 나프타 협상을 다시 시작해야 하며, 불법이민자 대책과 국경장벽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어떤 자세로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비할지 선택해야 하는 오브라도르 대통령에겐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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