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인도 순방 일정을 마치고 합장하며 다음 순방지인 싱가포르행 전용기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과 관련해 독립수사단을 통한 수사를 ‘특별’ 지시했다. 인도를 순방 중이던 지난 10일 현지에서의 일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비서진의 보고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9일 밤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기무사에 대한 수사지시는 상황을 그만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촛불혁명’에 정통성을 두고 있는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촛불집회에 대한 무력진압을 검토한 것조차 참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 안팎의 공통적인 진단이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 “촛불혁명이 탄생시킨 대통령”이라고 공언해왔다.

◇ 문건의 출처·보고시기·지시형식 두고 논란 

다만 발표형식이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뒷말이 적지 않다. 해외순방 와중에 문 대통령이 국내사안에 대해 ‘특별지시’를 내린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다. 지난 3월 UAE를 순방 중이던 문 대통령은 아프리카 해역에서 한국인 선원이 피랍됐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청해부대 파견을 지시한 것은 귀국한 직후였다. 일각에서는 해외순방 중인 정상이 자국 현안에 대해 지시를 내리는 것이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사안이 가지고 있는 위중함, 심각성, 폭발력 등을 감안해 국방부와 청와대 참모진들이 신중하게 살펴보느라 시간이 걸렸던 것”이라며 “현지에서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순방을 마친 뒤 지시를 하는 것은 지체된다고 판단해 현지에서 바로 내린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에서 특별지시를 내릴 정도로 시급을 다투는 사안인가에 대해서는 청와대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실제 ‘기무사 문건’이 공론화 된 것은 대통령 순방 전이었던 지난 6일이다. 출국 전 특별지시를 내릴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월 기무사 문건의 존재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송 장관이 보고를 하지 않았거나, 청와대가 알고도 그간 덮어두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가능한 대목이다.

청와대가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의 존재를 인식한 정확한 시기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점도 의문을 키우는 대목이다. 11일 취재진과 만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건에 대한) 청와대 보고 여부는 두부 자르듯이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사실관계에서 회색지대 같은 부분이 있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고만 했다. 취재진의 집요한 질문에도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정보기관의 문서가 공개된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날 YTN 라디오에 출연한 이철희 의원은 “계엄령 문건은 군사기밀로 지정돼 있는 게 아니다. 국회의원으로서 합법적 자료요구를 해서 제출받은 것이지 몰래 빼돌린 게 아니다. 또 다른 문건은 양심에 의해서 제보를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구체적인 출처는 밝히지 않았다.

◇ 군부쇄신·적폐청산 등 목적 추정

이철희 의원실과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기무사 문건 중 일부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특별지시에 대해 표면적인 이유보다 이면의 ‘정무적’ 목적이 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사선상에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김관진 전 안보실장 등이 있다는 점에서 군부 인사교체의 신호탄으로 본다. 민주당은 조 전 기무사령관과 김 전 실장이 각각 하나회 후신인 알자회와 독사파라는 사조직 모임을 통해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박범계 의원과 홍익표 의원 등을 중심으로 이들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곧 해왔다.

유리한 여론환경 조성을 위한 ‘충격요법’이라는 시각도 있다. 문 대통령의 고공 지지율을 견인하던 대북안보 사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최근에는 경제이슈가 평가의 잣대로 부상한 상황이다. 하지만 실업률 증가, 소비위축 등 경제측면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가 없고, 장하성 정책실장의 인사개입 의혹과 조국 민정수석의 권력남용 논란 등 불리한 현안이 청와대를 둘러싸고 있다. 다시 한 번 ‘적폐청산’ 카드로 불리한 국면을 돌파하고, 이를 통해 국정동력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하락국면임은 분명하다. 9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7월 1주차 주중동향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69.3%로 2.2% 포인트 하락했다. 6월 2주차 75.9%를 기록한 이래로 3주째 하락이다. 같은 기간 민주당 지지율은 9.5% 포인트 하락한 47.5%로 집계됐다.

<기사에 인용된 리얼미터의 조사는 CBS의뢰로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진행됐다. 유무선 ARS, 무선 전화면접 혼용방식으로 진행해 2,504명이 응답을 완료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p, 응답률은 4.1%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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