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고혈압약' 사태 여파가 가시지 않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문제 성분의 유해성 입증에 주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지난 주말 국내 600만명의 고혈압 환자들이 병원과 약국 앞에서 발을 동동거렸다. 이틀 후 문제의 약을 복용한 환자 수가 18만여명으로 확인되면서 사태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일각에서는 유해성 여부가 명확치 않다는 이유로 소홀히 다룰 경우 자칫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진행되는 모든 절차와 결과에 대해 피해 환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피해 환자들 불안감, 정확한 검증만이 해결

발암 의심물질이 검출된 중국 기업 제지앙화하이의 ‘발사르탄’으로 만든 혈압약 복용 환자가 총 17만8,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보건복지부는 문제의 약을 다른 약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하고, 유럽 등과 공조해 원인 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식약처의 조치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화학물질 사건, 사고는 쉬쉬할 경우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어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 진행될 조사는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의 유해성 여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NDMA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2A(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된 물질이다. 2A는 동물에게는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인체 실험에 대한 명확한 결과는 없는 물질이다. 다만 NDMA를 사람이 장기 복용할 경우 간이나, 위장에 좋지 않다는 내용의 논문들은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식약처에 따르면 해당 중국 기업은 2015년부터 제조 공정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당국은 해당 고혈압약을 복용한 환자들의 최대 복용기간을 3년으로 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건강피해 사건 백서’ 제작총괄을 맡았던 김용화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이미 인체에 영향을 미친 피해자들이 존재한 상태에서 조사를 시작했지만, 이 사건은 아직 드러난 게 없는 만큼 확정적으로 얘기할 순 없다”면서도 “때문에 지금부터는 문제 성분의 복용기간과 함량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검증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만약 복용 기간이 1년 미만이라고 한다면 별다른 영향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10년 이상이라면 위험성은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라며 “또한 환자마다 증상에 따라 복용량도 다르기 때문에 같은 약을 먹었다고 해서 같은 증상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FDA는 2015년 문제의 발사르탄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 FDA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만 밝힌 상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미국FDA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만큼 향후 해당 업체에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이하게 볼 문제는 결코 아니다. 환자들에게 모든 검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에 따른 치료책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고혈압 질환으로 진료 받은 인원은 약 604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5명 중 1명은 70대 이상 여성 환자였다. <뉴시스>

◇ 복제약 위탁제조 가능한 시스템도 문제

이번 사건으로 새삼 알게 된 사실은 고혈압 약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종류가 많은 만큼 다양한 업체의 발사르탄이 사용되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국내에서 문제의 원료가 사용된 발사르탄은 전체 2.8%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원료로 만든 약의 개수는 115개나 된다. 대부분 복제약으로 불리는 제네릭 종류다. 이에 문제의 원료가 수입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당국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위탁 제조가 가능한 점도 국내 많은 업체들이 줄줄이 피해를 보게 된 원인이 됐다. 관련 업체는 54곳이지만, 해당 발사르탄을 수입한 업체는 9곳뿐이다. 이 업체 중에는 제약사도 있고, 제약사가 아닌 업체들도 다른 제약사에 판매하는 형식으로 퍼져나갔다는 설명이다. 물론 현행법상 의약품 위탁 제조는 불법이 아니다. 실제로 이번 사태로 일본, 홍콩, 타이완 등도 판매중지가 결정됐지만 한국에서 가장 많은 제품이 나왔다.

임진형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하 약준모) 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금 판매중지를 당한 의약품 모두 성분도 똑같고, 심지어 제조업체도 몇 군데 되지 않는다”면서 “물론 누구도 예견할 수 없었던 일이었지만, 근본적으로 이 같은 문제들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똑같은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제품 교환 등의 소극적인 정부 대처도 아쉽다는 지적이다. 임 회장은 “의약품안전원에서 고혈압약 피해 환자들을 대상으로 부작용 등 의심 증상에 대한 신고를 받고 있지만 정부에서도 언론에서도 홍보가 되고 있지 않다”면서 “약품 교환해주겠다는 식의 대처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말 그대로 발암물질은 언제 어떻게 증상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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