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현(좌) 전 SBS아나운서는 네팔을 돕는 NGO ‘나마스떼 코리아’로부터 강의와 활동 지원 요청을 받고, 2017년 12월 15일 네팔행 항공에 몸을 실었다. 류지현 전 아나운서는 이들에게 지원 물품 보다 더 중요한 건 희망을 심어 주는 일. 그리고 교육을 통한 변화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2017년 12월 15일, 가방 가득 지원 물품을 채우고 인천 공항에서 네팔행 항공에 몸을 실었다. 개인 물품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방마다 옷과 학용품 등 지원품을 가득 넣었지만 전하고 싶은 마음의 무게는 그보다 더했다.

네팔을 돕는 NGO ‘나마스떼 코리아’로부터 강의와 활동 지원 요청을 받고, 평소 ‘함께 이해하고 교류하는 지구촌 세상’ 인식을 갖고 있었기에 기꺼이 돕겠다고 나선 터였다. 그리고, 기왕이면 문명의 혜택과 교육의 기회가 많지 않은 곳이 더욱 의미가 클 거라 생각해 주저 없이 쉽게 가기 어려운 히말라야의 산간 마을까지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정말 고생이 될 거란 NGO측의 수차례 염려에, 막상 여정을 시작하려니 은근히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카트만두까지 8시간의 비행, 연결편이 바로 없어 카트만두서 밤을 보내고 히말라야 여행과 트레킹이 시작되는 포카라까지 2시간가량 로컬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짐뿐만 아니라 사람도 저울에 무게를 재고 탑승하고, 일어나면 머리가 닿아 몸을 숙여야 하는 작고 낡은 경비행기였다. 그리고 다시 낡은 트럭 하나에 사람과 짐 구분 없이 구겨 들어가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곡예 같은 4시간의 산길을 달렸다.

좌석 수와 상관없이 지나는 곳마다 하나 둘 사람을 태워, 짐칸이고 지붕이고 문 밖이고 차 밖에 매달려서라도 기어이 차량에 동승하니 다섯 사람으로 출발했던 차량은 도착 즈음엔 어느 새 12명이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바퀴만 굴러가면 공동의 이동 수단으로 활용하는 듯 보였다.

그나마 산간 마을까지는 길이 막혀 결국 차에서 내렸고,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짐을 함께 옮기며 산을 30여분 가량 걸어 오르자 장대한 히말라야의 설산 안나푸르나가 병풍처럼 펼쳐진 목적지 ‘땅띵’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기나긴 여정의 피로로 지친 얼굴이 무색하게 산간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와 직접 만든 꽃다발 세례로 만남을 환영했고, 이렇게 땅띵의 첫 날이 시작되었다.

세계 최고 위엄의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땅띵까지의 여정은 21세기 첨단 문명과 하루 불과 몇 시간 불을 밝히는 산 속 깊이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세기의 시간을 넘어간 듯해, 하루가 넘게 걸린 긴 소요 시간 이상의 시차를 느끼게 했다.

사진은 네팔 카스키주 안나푸르나 산골 오지 땅띵마을 학교에서 강의 중인 필자.

금방 밭에서 딴 감자와 컬리플라워, 푸른 채소 한 가지, 아침에 직접 짜낸 따뜻한 우유, 따끈한 온기가 남아 있는 달걀 등 자가 농산품이 전부인 소박한 식단에, 대낮에도 집안에서 어둠 속을 더듬어 식사를 하는 곳. 채 가려지지 않은 지붕과 창으로 잠자리에 누우면 하늘의 별과 마주 보며 온 몸으로 찬기를 껴안고 자는 곳. 가진 것이라곤 장엄한 자연의 선물 히말라야. 그마저 지구 온난화로 예전 보다는 눈이 확연히 적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수도 카트만두도 그리 나을 것은 없다. 2년 전 지진으로 마치 전쟁 후 폭격이라도 맞은 듯 폐허가 된 곳에 먼지가 가득히 쌓인 모습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무언가를 찾아 달리듯 차선도 신호등도 보이지 않는 좁은 길에 빽빽하게 가득 찬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정신없이 달려간다. 하지만, 정차한 듯 빼곡한 차 안에 갇히거나 길이 좁아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부딪칠 듯 간신히 지나도 네팔서 만난 운전자 누구 하나 불평이 없었다.

그런데 자연의 일부로 남아 있는 듯한 이 산간 마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이른 아침 목에 방울을 단 염소와 소를 몰고 산 위를 오르는 아낙네들 손에 들린 휴대전화, 100년 전에도 사용하던 화로에서 전기 없이 어둠 속에 음식을 하며 한 손엔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모습은 마치 문명과 자연의 부조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1년 반 전부터 시작된 수력발전 프로젝트도 변화의 큰 동력이다. 지난해 추가된 한국 업체들을 포함해 다국적 기업들이 참여하여 땅띵과 주변 마을들에 전기를 주고 관광 산업을 일으키며 미래를 밝힐 6년간의 큰 사업이다. 땅띵이 바깥세상과 소통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무엇보다 땅띵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꿈을 꾸기 시작한 사람들’을 통해서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 가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는 기적으로 여겼던 땅띵에서 이제는 Himalayan Milan 졸업생 17명 전원이 고등학교 졸업은 물론 대학 진학마저 꿈을 꾼다. 이런 변화 뒤엔 새마을 운동과 같은 변화를 꿈꾸는 교장선생님이 계시다.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발전에 감명 받아 네팔도 한국처럼 거듭나야 한다는 자각으로 산간 마을 학교를 지키고 주민들을 일깨우는 땅띵 Milan 학교의 Om Prekash 교장선생님, 한국의 변화를 교훈으로 무(無)에서 잠자던 땅띵을 눈뜨게 하고 더 큰 발전을 그린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한 꿈을 키우는 교장선생님과 함께 땅띵과 네팔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What is your dream?’이란 제목으로 강의하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내가 남기고자 한 것 또한 ‘꿈’과 ‘희망’이었다. 수줍은 듯 고개 숙이지만 호기심이 가득해 보이는 땅띵 학교의 학생들, 선생님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누구도 마주치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곱게 두 손을 모아 ‘나마스떼!’ 하고 인사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이들에게 지원 물품 보다 더 중요한 건 희망을 심어 주는 일. 그리고 교육을 통한 변화라고 확신했다. 그런 소신으로 전했던 ‘꿈과 희망의 메시지’가 그들의 마음과 교류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땅띵에서 다시 포카라를 거쳐 카투만두를 경유해 인천 공항까지. 역시 하루 이상을 보내야 했지만 돌아오는 길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깥세상을 향한 꿈’을 꾸기 시작한 이들의 희망의 다리가 벌써 이어진 것을 느끼기에... 그리고, 네팔과 땅띵이 내게 남긴 여운들 - 저녁이면 이웃도 가족이 되어 함께 모이고 나누는 공동체 문화,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겨운 수다, 서두르지 않고 태연한 ‘네팔식 시간,’ 그리고 ‘나마스떼!’ 인사와 함께 활짝 피어나는 ‘순수 미소.’ - 그것은 곧 그들의 미래를 만들어 갈 자산이기도 하다. 그건 혹시 나와 우리가 어느새 놓치고 살았던 것들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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