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6·13 지방선거를 치른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네. 지금까지 우리 정치를 오염시켰던 낡은 세력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선진적인 정치 지형이 등장하길 바라고 있네만 잘 될는지…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나는 지난 선거에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구호를 내걸었던 젊은 여성에게 투표했네. 내 나이 또래친구들 중에는 ‘시건방지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젊은이다운 패기가 좋아서 선택했지. 물론 우리 사회도 이제 남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해야 한다는 페미니즘,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는 녹색의 가치를 존중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생태주의, 이 두 이데올로기에 대한 평소의 믿음도 작용했고. 애당초 당선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투표에 참여한 서울 시민의 1.67%인 8만 2,874명의 지지를 받아 4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네.

광역의회 정당투표에서는 정의당을 선택했네. 대다수 사람들이나 언론이 아무런 고민 없이 ‘진보’ 딱지를 붙이는 더불어민주당도 우리의 미래를 설계할 정당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일세. 내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미국의 민주당보다도 더 보수적인 자유주의 정당일 뿐이야. 이 역시 나쁜 선택은 아니었네. 정의당이 9.7% 득표율로 4등을 했으니까. 문제는 서울지역 광역의회 비례대표 선거에서 10% 가깝게 받고도 서울시의회 110석 중 단 1석만 차지했다는 사실일세. 의석 비율로 따지면 1%도 안 되는 거지.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50.9% 정당득표율로 110석 중 102석을 차지했네. 의석 비율로 따지면 92.72%를 차지한 거야.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민심을 심하게 왜곡시키는 이런 선거구 제도를 언제까지 그냥 놔둬야 할까?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온오프라인 방송이나 신문 등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서구 복지국가의 국민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자주 접하면서 복지국가에 관해서 조금씩 알아 가고 있네. 스웨덴, 핀란드 등 북구 유럽 복지국가 사람들의 안정된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고. 하지만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네. 국가와 자본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하면 ‘마음씨 좋은’ 정치인들과 자본, ‘착한’ 국가가 ‘측은지심’에서 복지국가를 만들어 줄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 북구 유럽인들이 지금 향유하고 있는 ‘멋진’ 복지체계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난 100여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갈등과 투쟁을 겪었는지를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러니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사람들이 소속 정당의 정체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을 내걸어도 의심하지 않고 찍는 우를 범했던 거야.

사민주의 복지국가인 북유럽 국가들이나 조합주의적인 복지 모델을 갖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가 지금처럼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노동조합이었네. 노동조합의 힘이 강할수록 더 완벽에 가까운 복지국가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지. 반면에 미국 같은 자유주의적인 복지모델을 갖고 있는 나라는 노동조합 가입률이 10% 정도밖에 되지 않네. 그 결과 미국은 ‘복지국가’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불평등이 심한 나라야. 물론 다른 정치, 사회, 경제, 역사, 문화적 요인들이 한 나라의 복지체계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은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게. 다만 복지국가 모델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가운데 노동조합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일세. 그리고 노동조합의 정치적 힘은 노동조합 가입률에서 나오네. 사민주의적인 복지 모델을 갖고 있는 북부 유럽 국가들은 지금도 노조가입률이 60~70%를 상회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10% 정도야. 사실 이런 나라에서 복지국가를 꿈꾸는 건 문자 그대로 연목구어(緣木求魚)일세.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는 격이니 전혀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뜻이야. 너무 비관적인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어떻게 '공존', '상생', '배려', '포용', '다양성', ‘생명’ 같은 가치들이 존중 받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유난히 반노동조합 정서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노동조합 가입률을 30~40%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묘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든 서두르면 부작용이 크거든.

그러니 천천히 준비할 수밖에 없네. 4~5년마다 주기적으로 실시되는 각종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나갈 수밖에 없어. 그래서 필요한 게 사회경제적 불평등, 노동, 환경과 생태, 다문화가정, 여성, 농민, 청년, 노인 등 다양한 이슈들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일 정당들의 발전이야. 우리도 이제 유럽 국가들처럼 다당제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뜻일세. 이제는 2~3개의 거대 대중정당이 이미 다분화된 국민들의 욕구를 다 수렴할 수는 없기 때문이야. 보수일변도의 정치 지형에서 벗어나 녹색당, 농민당, 노동당, 기독당, 자유당, 사회당, 청년당, 노인당, 공산당 등등 다양한 정당들이 서로 경쟁해야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때가 된 거야. 물론 이런 다당제 정치체제가 이 땅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거구제를 고쳐야 하겠지만. 다당제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로는 불가능한 꿈이거든.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