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 상임의장(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오른쪽)이 경제동반자협정 문서를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유럽연합(EU)과 일본이 거의 모든 교역품에 무관세 혜택을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연합과 일본의 인구 총합은 약 6억명, GDP로는 전 세계의 3분의1을 차지하며 양측의 지난해 교역량은 1,520억달러에 달한다. 도널드 투스크 유럽연합 상임의장의 말처럼, ‘역사상 가장 거대한 양자 경제협정’이라는 이름이 붙기에 부족함이 없다.

◇ 수출품 99%까지 무관세… 유럽 농산물·일본 자동차 최대 수혜 예상

17일 도쿄에서 만난 유럽연합의 장 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과 도널드 투스크 상임의장, 그리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경제동반자협정에 서명했다. 협정이 발효되면 일본이 유럽으로 수출하는 제품의 99%, 유럽이 일본으로 수출하는 제품의 94%가 관세를 면제받는다. 양측의 무관세 수입품 비율이 다른 것은 일본이 쌀을 비롯한 일부 품목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다만 유럽산 수출품의 무관세 비율도 유예기간이 지난 후 최종적으로 99%까지 높아진다.

이번 협정은 유럽연합 의회와 각국 정부, 그리고 일본 의회의 비준을 거쳐 내년 말 즈음에 발효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 측에서는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수출품인 와인·치즈·돼지고기 등의 식료품과 명품 가방 등의 사치품이 이번 협정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매년 일본에 지불해온 관세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도 아낄 수 있다.

한편 일본은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무관세로 판매할 거대 시장을 얻게 된다. 현재 유럽연합이 일본산 자동차에 부과하고 있는 10%의 관세는 협정 발효 후 8년간 단계적으로 사라진다. 일본 외무성은 이번 협정으로 일본의 GDP가 1%(약 50조원) 늘어나고 일자리가 29만개 생겨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미국 못 믿는 수출국들, 끼리끼리 뭉치나

유럽연합과 일본은 지난 2013년부터 관세를 낮추기 위한 자유무역협상을 벌여왔다. 논의가 급물살을 탄 데에는 역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힘이 컸다. 일본은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빠져나간 후 이를 대체할 새 경제협정을 찾아 나섰다. 유럽연합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공격을 받으면서 제3국가와 경제교류를 더 확대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베 총리와 투스크 상임의장은 도쿄에서 협정문에 서명하며 자유무역의 가치를 강조했다. 직접적으로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보호무역주의 배격과 ‘WTO 정신’을 언급하면서 관세정책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미국을 불공정하게 대한다고 수차례 공개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대 미국 수출길이 막힌 세계 주요국은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은 일본 외에도 오스트레일리아·아세안·칠레와 무역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캐나다와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비준 절차도 진행 중이다. 투스크 상임의장은 일본을 방문하기 하루 전 중국을 찾아 리커창 총리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인도·일본과 한국은 미국이 빠져나간 TPP 대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타결하기 위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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