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들이 두려움 없이 무지개 깃발을 펼쳐들 수 있는 날은 아직 먼 일로 느껴진다.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인권의 사전적 정의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이라는 문구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시민의식의 발전 속도가 근대화와 자유화를 따라잡지 못한 사회에서는 정치적 발언권을 갖지 못한 소외계층에 대한 차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인권이 아닌 내 인권이 중요하다”는 언어도단적인 문구가 부끄럼 없이 사용되기도 한다.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성 전환자 등의 성소수자들은 가장 대표적인 ‘다른 사람’이다. 이들은 근대화와 함께 인권의 개념이 점차 확대되는 가운데서도 마지막까지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로 남아있었다. 또한 한국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자유도 갖지 못하고 있다.

올해 5월 발간된 SOGI법정책연구회의 ‘한국 LGBTI 인권현황’ 보고서는 국가별 성소수자 인권보호 실태를 ‘완전한 평등(100%)’부터 ‘심각한 인권침해와 차별(0%)’까지 구분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평가한 한국의 2017년 무지개지수는 11.85%. 몰도바‧벨라루스‧산마리노와 유사한 수준이며, 2016년 조사결과보다도 0.47%p 낮다. 한국보다 성소수자의 인권보장 수준이 낮다고 평가된 나라는 터키와 러시아 등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5개 국가뿐이다.

◇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성소수자 혐오발언’ 만연

국가인권위원회가 작년 초 발간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94.6%가 온라인상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한 바 있다. 장애인‧이주민‧소수종교 신도 등 기타 사회적 소수집단과 비교해도 가장 높은 수치다. 성소수자, 그 중에서도 주류인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근거 없는 혐오감정을 드러내는 ‘호모포비아(통칭)’는 일베‧디시 등 극우성향의 커뮤니티뿐 아니라 국내 대부분의 대형 커뮤니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공공연한 혐오는 곧 사회적 억압으로 이어진다. 작년 부산과 제주가 퀴어문화축제를 열기 위한 광장‧공원 사용요청을 정당한 이유 없이 반려했고, 서울시 또한 “일부 시민이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는 이유로 서울광장의 사용허가를 내주길 꺼렸다. 동대문구 시설관리공단이 성소수자 체육행사에게 내줬던 체육관 사용허가를 같은 이유로 취소한 사례도 있다.

논의를 이끌어나가야 할 정치인들도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가 대표적인 예시다. 19대 대선에서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처음으로 공론화됐다는 점은 이전의 선거들보다 나아진 부분이지만, 그 내용은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다. 주요 후보 5명 중 ‘성적 지향’이 포함된 차별금지법 제정에 명확하게 찬성한 것은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뿐이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과 거짓 정보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유권자들에게 표출됐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홍준표 후보와의 문답 중 “동성애에 반대한다.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미국 배우 조지 클루니는 인터뷰 중 게이가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질문받자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이 동성애 혐오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내 대답은 ‘노코멘트’다”고 대응했다. 단순한 공인도 아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모든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대통령 후보자가 정책토론회에서 사적인 거부감정을 공공연히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문재인 대통령의 해당 발언에 대해 “인간의 존재와 정체성은 그 누가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작년 대선 중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의 동성애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무지개 깃발을 펼쳐 든 장서연 공익인권변호사. <뉴시스>

◇ 법이 지켜주지 않는 인권은 누가 지켜주나

한국에서 성소수자의 인권 보호는 아직까지도 제도권 바깥의 일이다. 서울특별시의 학생인권조례를 제외하면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특별한 법률규정도 없으며, 혐오범죄에 대한 처벌을 명시한 법률도 없다. 동성 간의 결합에 대해 가족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UN은 국가별 정례 인권 검토(UPR)라는 이름하에 회원국의 인권보호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작년 11월 진행된 한국의 세 번째 UPR에서는 95개 회원국이 총 218개의 인권개선 권고안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이 중 25건 이상이 성소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미국과 노르웨이, 프랑스를 비롯한 20개 국가가 성소수자 보호와 성적지향에 근거한 불평등의 종식을 위한 차별금지법의 채택을 권고했다. 범위를 ‘모든 종류의 차별 금지’ 노력을 강조한 국가로 넓히면 그 숫자는 23개국으로 늘어난다. 한편 영국‧캐나다‧네덜란드‧덴마크 등 7개 국가는 항문성교를 범죄로 규정하고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것을 명시한 군형법 제 92조의 6항의 폐지를 권고했다.

정부는 올해 2월 3차 UPR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는데,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대해선 모두 불수용 입장을 고수했다. 2007년 최초 발의된 후 세 차례나 입법이 좌절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성적 지향 등 차별금지 사유와 관련된 사회적 논란으로 인해 헌법재판소도 입법 추진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군형법 92조 6항에 대해선 “성적 지향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규정한 것이 아니다. 군이라는 공동생활의 특수성을 감안해 군 기강 확립을 목적으로 규정된 것이다”고 해명했다. 다수의 법조인들이 지적해왔던 조항 자체의 모호성, 그리고 작년 4월에 있었던 육군 내 성소수자 색출사건에서 이 ‘동성애 처벌법’이 근거로 활용됐다는 사실은 무시됐다.

◇ 나이와 믿음의 벽, 그리고 무관심

가장 대표적인 성소수자 이슈인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주제로 국민인식을 조사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그 찬성률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갤럽이 진행한 수차례의 설문조사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찬성률은 2001년 17%에서 2013년 25%로 높아졌으며, 2014년에는 35%로 크게 늘었다. 2013년과 14년의 차이가 큰 데는 13년 중 뉴질랜드와 프랑스, 미국의 다수 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던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2017년 조사에서는 합법화 지지율이 34%로 2014년과 대동소이했다. 대부분의 설문조사는 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찬반을 가르는 요인이 크게 세 가지라고 말한다. 연령과 신앙, 무관심이 그것이다.

한국갤럽이 작년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3.1%p)에 따르면 19세에서 29세 청년층의 동성결혼 합법화 찬성률은 66%였지만, 30대에선 41%‧40대에선 34%며 60대 이상에선 16%에 불과하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조사에서도 20대의 동성결혼 지지율은 2010년 30.5%에서 2014년 60.2%로 빠르게 높아진 반면 60대 이상 인구는 동기간 6.5%에서 8.3%로 1.8%p 오르는데 그쳤다.

한편 종교, 특히 개신교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또 다른 요소다. 거의 대부분의 설문조사에서 개신교를 믿는 응답자는 동성애‧성소수자 문제를 인권문제로 인식하는 비율이 종교가 없는 응답자에 비해 확연히 낮게 나타난다. 천주교와 불교의 경우 조사기관에 따라 개신교 응답자와 무교 응답자 사이에 위치하기도, 무교 응답자보다 더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높은 ‘무응답’ 내지 ‘모름’ 응답률은 성소수자 문제가 왜 공론화되지 못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015년 아산정책연구원은 동성애 이슈에 대한 국민인식의 변화를 조사한 후 “당분간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거나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는 진단을 내렸다. 지역구 중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 속에서 성소수자들이 투표세력으로서 의미를 갖기 힘들뿐더러, 무엇보다 경제‧안보문제에 비해 이슈 자체의 중요도가 낮게 인식되고 있다. 관련 설문조사에서 ‘잘 모른다’는 응답이 높은 것은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중요한 정치이슈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19대 대선과 제 7회 지방선거에서 동성애 문제가 산발적으로 다뤄지기는 했으나 지지율 동향이나 선거 결과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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