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 염형철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세류성해(細流成海).’ 가는 물줄기가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힘이 모이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미와도 맥이 닿아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이를 경험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것은 거대 권력도 아니고 정치적인 어젠다도 아니었다. ‘국민주권’을 위해 행동했던 ‘시민들의 힘’이었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대한민국 변화를 이끄는 중심, ‘시민운동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제언을 경청해본다. [편집자주]

 

“공익활동가에게 희생과 헌신만 바라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시사위크=김경희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오시느라 많이 더우셨죠? 얼마나 더운지 수돗물이 다 미지근하네요.”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염형철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밝은 표정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얼마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임기를 마친 그는 요즘 잠시 숨을 돌리며 새로운 활동을 구상하고 있다. 문제제기와 비판에 머물렀던 기존의 시민단체 활동을 넘어 대안을 찾아 실현하는 활동을 모색 중이다.

20년 넘게 환경운동가의 길을 걸어온 염형철 전 사무총장이지만, 이날 만난 이유는 환경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동행’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근황과 앞으로 계획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눈 뒤 본격적으로 ‘동행’을 주제로 올리자, 염형철 위원장은 신이 나서 말을 이어갔다.

◇ 안타까운 죽음으로 시작된 ‘동행’ 발걸음,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가 되다

동행은 열악한 환경 속에 놓인 공익활동가들에게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시사위크=김경희 기자>

‘동행’은 ‘공익활동가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공익활동가 조합원들에게 상호부조와 소액대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은 공익활동가들 위해 ‘안전망’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조합으로, 2013년 설립됐다. 각기 다른 지역과 분야에서 활동 중이지만, 너나할 것 없이 열악한 환경에 놓인 공익활동가들 사이에서 상부상조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동행’의 탄생 배경이자 가장 기본적인 사업은 상호부조다. 조합원인 공일활동가가 갑작스런 사망이나 부상, 질병, 장애 등을 겪거나 결혼 또는 출산을 하면, 상호부조금을 지급한다.

“2010년 한 공익활동가의 죽음이 ‘동행’의 출발점이었어요.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했던 활동가가 야근하다 갑자기 쓰러져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심장에 약간의 지병이 있었던 거예요. 그렇다보니 보험가입이 안 됐고, 심지어 4대보험에도 해당이 안 됐어요. 죽음에 대한 대비가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거죠. 교통사고 유자녀를 돕는 운동을 하던 활동가가 정작 자기 아이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떠난, 정말 안타까운 죽음이었어요. 그때부터 활동가들을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됐고, 2013년 동행이 설립 됐습니다.”

뿐만 아니다. 학자금 대출을 천천히 갚을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긴급 자금 대출도 해준다.

공익활동가는 기본적으로 수입이 적다. 심지어 제때 급여를 받지 못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보니 신용카드나 대출을 받기도 힘들다. 그렇다보니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투잡을 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염형철 위원장 역시 환경운동을 하며 ‘버섯솜’ 장사까지 해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똑같은 사람이다. 예상치 못한 일로 큰돈이 들어가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활동 중 벌금을 맞는 일도 종종 있다. 이럴 때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순식간에 빚더미에 오르고, 빚이 불어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이제 막 시작한 젊은 활동가들은 대부분 학자금 대출이 남아있어요. 또 수입이 적다보니 미래를 대비한 저축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빚을 안고 사는 이들이 대다수에요. 그걸 제때 못 갚으니까 이자가 오르고, 신용불량자가 되곤 하죠. 그런데 은행에 가도 직업군 분류에 포함되지 않는 등 여러 이유로 신용을 얻기가 힘들어요.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활동가들을 크게 위축시키고, 결국은 포기하게 만듭니다. 1년 안에 30%는 그만두고, 3년이면 3분의 1도 안 남아요. 10년이면 거의 다 떠난다고 봐야하고, 패가망신하거나 병을 얻어 폐인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동행의 기본 역할은 상부상조다. 조합원의 힘든 일을 나누고, 기쁜 일을 더한다. <동행 홈페이지>

◇ 공익활동가들의 좋은 환경,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

대기업이나 각광받는 젊은 기업들은 소위 ‘사내복지’가 훌륭하고, 젊은 청년 구직자들은 이를 선호한다. 하지만 공익활동가들에겐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동행’은 이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공익활동가들도 휴식과 재충전, 문화생활을 만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지난 5월, ‘동행’은 ‘2018 공익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을 통해 총 6팀과 9명의 개인에게 1,500만원을 지원했다. 이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 계획을 제출했고, 저마다 50만원~2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동행은 상호부조와 소액대출은 물론 재충전 자금 지원과 같은 공익활동가 사기진작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시사위크=김경희 기자>

염형철 위원장은 “대안학교인 ‘샨티학교’ 선생님 아홉 분이 MT를 가고 싶다고 신청해 200만원을 지원했습니다. ‘재충전 지원사업’은 경쟁률이 엄청 치열할 정도로 반응이 좋아요. 공익활동가들을 응원하고, 사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죠. 이를 위해 영화티켓이나 식당이용권, 교육비 등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앞서 소개한 상호부조나 소액대출이 공익활동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업이라면, 이러한 사업은 공익활동가들에게 윤택한 삶을 제공하기 위한 사업이다. 염형철 위원장은 “각박한 삶 속에서는 좋은 활동이 나오기도 어렵습니다. 활동이 극단적인 양상을 띠거나, 단발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보단 장기적이고 깊이 있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선 여유와 포용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요. 공익활동가들이 조금이라도 더 여유를 갖고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면, 그들의 활동도 더 좋아질 겁니다”라고 강조했다.

‘동행’은 이 같은 사기진작 사업을 꾸준히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염형철 위원장은 “일반 기업들처럼, 콘도 숙박권 같은 걸 꼭 마련해보고 싶어요. 성수기엔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비수기에라도 공익활동가들이 부담 없이 휴식을 취하고 올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공익활동가들이 활동 중 폭행이나 모욕에 노출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런 부분을 지원하는 서비스도 마련하고 싶네요”라고 말했다.

이 같은 좋은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결국 필요한 것은 돈이다. ‘동행’의 운영자금은 크게 조합원들이 내는 조합비와 후원금으로 구성된다. 최근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제1회 사업화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아 5억원의 기금을 출자받기도 했다. 앞으로는 수익사업을 통해 자금력을 키울 계획이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조합원이다. 조합의 규모가 커질수록 사업의 규모와 질도 더욱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약 100여개 단체, 850여명이 가입해있다. 염형철 위원장은 “‘동행’은 비교적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어요. 그만큼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물론 열악한 환경의 공익운동가들에겐 월 1만원의 조합비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 게 사실이죠. 이를 위해 연계 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염형철 위원장은 공익활동가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오랜 기간 더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 역시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사위크=김경희 기자>

염형철 위원장은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및 공익활동가들의 가입도 적극 장려했다. 단순히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보수·진보를 떠나 모든 공익활동가들이 안정적인 환경 속에 목소리를 내야 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보수단체 활동가들은 더욱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어요. 진보단체의 경우 어느 정도 인식과 체계가 있는데, 보수단체는 그렇지 않아요. 한 순간에 잘리거나 착취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동행’은 정치집단도 아니고, 어떤 목소리를 내지도 않아요. 법적으로나 내부규정으로나 아예 금지돼있어요. 단지 공익활동가들의 좀 더 나은 생활을 지원할 뿐이에요. 자신의 정체성을 공익활동가로 생각한다면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누구나 가입하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요.”

인터뷰 과정에서 염형철 위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선순환’ 구조의 안착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공익활동가들은 희생과 헌신으로 활동했어요. 그렇다보니 자신을 방전시킨 뒤 사라졌죠. 이것이 반복되면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없어요. 공익활동가들이 안정적으로 오래 활동하면, 그만큼 더 좋은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겠죠. 그러면 공익활동의 범위와 깊이가 확대될 거고, 좋은 단체도 많아질 겁니다. 이는 다시 좋은 활동가를 키우는 기반이 될 거고요. 이런 선순환 구조가 안착되면 우리 사회는 꾸준히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동행’이 그런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후원은 언제나 환영이다. 염형철 위원장은 “더 좋은 사회를 바라고 돕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거나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엉뚱한 곳에 지원해 허튼 데 쓰이는 일도 종종 있죠. ‘동행’을 통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공익활동가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금전적인 후원은 물론이고, 문화공연 티켓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후원할 수 있어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공익활동가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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