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으로 북미 종전선언이 지체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북한이 종전선언에 애가 탔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조미 사이 신뢰 조성을 위한 필수적인 요구”라고 했다. 우리 측을 향해서는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다”며 종전선언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촉구했다. 하지만 협상 파트너인 미국은 유해반환에 반색할 뿐 종전선언에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형국이다.

판문점 선언문에 담긴 취지를 살펴보면, 종전선언은 북한 비핵화의 ‘입구’로서의 성격이 크다. 종전선언을 통해 전쟁이 종식되면, 자위목적이라고 주장했던 북한은 핵을 보유할 필요성이 사라진다. 따라서 북한은 비핵화 절차를 시작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로드맵이었다.

◇ 종전선언에 미온적인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미 회담 구상도 이 맥락에서 추진됐다. ‘법적 구속력은 최소화하되, 상징성을 담는다’는 종전선언의 추진방향에서 확인된다. 지난 5월 27일 2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이 추진됐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남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조성된 이유다.

종전선언을 비핵화의 출발점이라고 본다면, 현재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뜨리고 있는 당사자는 미국이다. 사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나름 합의문을 이행하기 위한 모습을 보였다. 보관하고 있던 미군 유해 송환절차에 착수했고, 구두합의 내용이었던 미사일 실험장 폐기에도 나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등 미국의 주요 인사들은 북한의 조치를 칭송하면서도, 무기 리스트 등 추가 요구를 하는 상황이다.

종전선언에 관한 미국의 태도변화 이면에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남북미 3자 차원에서 논의되던 종전선언은 최근 중국이 가세한 남북미중 4자로 무대를 옮겨가고 있다. 북한의 적극적인 요청이 있었고, 중국도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 참여하길 원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비핵화 협상에 중국의 개입을 결코 반기지 않는 상황이다.

◇ 북미수교 후 예상되는 미중의 동아시아 패권다툼

세계무역기구와 월스트리트가 분석한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피해국가 순위 <그래픽=뉴시스>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신경전이 벌어진 것도 ‘중국 배후설’이 원인이었다. 회담 성사 후 북미 간 설전이 오고가자 미국은 북한의 배후에 중국이 있을 것으로 의심했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태도변화의 배후에는 중국이 있는 것 같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을 묻기도 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급기야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선언을 했는데,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심리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는 북미 수교 이후의 상황 때문이다. 현재는 북한의 핵개발 및 미사일 실험으로 대북제재가 가동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중국의 대양진출을 가로막는 효과로 나타났다. 문제는 북미수교가 이뤄질 경우, 중국이 북한을 발판삼아 대양진출을 노려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는 이유다. 최근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라면 더욱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tbs라디오에서 “미국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삼각동맹을 가지고 중국을 압박하는 국제질서가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돼 왔는데, (북미수교까지 완성되면) 전부 새로 편성이 돼야 한다”며 “중국은 핵문제가 해결되면 본격적으로 발언권 행사하고 동아시아에서는 주인노릇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다. 그걸 미국이 쉽게 인정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처해진 것은 우리 측이다.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지만, 중국이 개입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에 대해 “가급적 조기에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하는 것이 우리 정부 바람”이라며 “형식과 시기를 모두 다 열어 놓은 상태로 관련 당사국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원론적 입장을 취했다. 당사국이 누군지 묻는 질문에는 “외교와 국익”을 언급하며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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