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간 스파이 흑금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공작’(감독 윤종빈)이 국내 관객들과 만날 채비를 마쳤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현란한 액션, 숨 가쁜 추격전, 화려한 총격신은 없다. 응징해야 할 절대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를 끊임없이 교란시키는 치열한 심리전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어떤 첩보영화보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팽팽한 긴장감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북으로 간 스파이 흑금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공작’(감독 윤종빈)의 이야기다.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영화다.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가 주도한 이른바 북풍 공작 중 하나인 ‘흑금성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1993년,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된다.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 스카우트된 박석영(황정민 분)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북의 고위층 내부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안기부 해외실장 최학성(조진웅 분)과 대통령 외에는 가족조차도 그의 실체를 모르는 가운데 대북 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 주재 북 고위간부 리명운(이성민 분)에게 접근한다.

그는 수년에 걸친 공작 끝에 리명운과 두터운 신의를 쌓고 그를 통해서 북한 권력층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1997년 남의 대선 직전에 흑금성은 남과 북의 수뇌부 사이 은밀한 거래를 감지한다. 조국을 위해 굳은 신념으로 모든 것을 걸고 공작을 수행했던 그는 걷잡을 수 없는 갈등에 휩싸인다.

‘공작’에서 흑금성 박석영으로 분한 황정민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공작’은 실제 남과 북 사이 벌어졌던 첩보전의 실체를 처음으로 그려낸 한국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그동안 남파 간첩을 다룬 작품은 많았지만 낯선 이야기인 북파 간첩을 소재로 다룬 점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화는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남북 관계가 북핵 이슈로 전쟁 직전의 긴장감으로 치달았던 때부터 남북정상회담 이후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시기까지를 아우르는데, 남과 북 사이에 있었던 긴장감과 더불어 같은 민족이기에 오갈 수밖에 없었던 미묘한 교감들을 폭넓게 그려낸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상상 가능한 이야기로 분단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진다.

관객에게 이미 익숙한 할리우드의 첩보 영화들과 궤를 달리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현란한 액션, 숨 가쁜 추격전, 화려한 신무기 대신 치열한 심리전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한 북측의 집요한 의심과 이를 피해 가기 위한 흑금성의 페이크가 쉼 없이 교차한다.

북한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낸 ‘공작’. 황정민(왼쪽)과 이성민의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크린에 구현한 북한의 풍광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방송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북한의 모습을 리얼하게 재현한다. 특히 평화로운 평양 시내의 모습과 굶주림에 지친 끔찍한 영변의 모습이 대비를 이루며 씁쓸함을 안긴다. 또 흑금성과 김정일이 대면하는 결정적 공간인 김정일 별장은 압도적인 분위기로 긴장감을 선사한다.

배우들의 열연도 ‘공작’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많은 대사 탓에 ‘구강 액션’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공작’에서 황정민·이성민·조진웅·주지훈 등은 제 몫, 그 이상을 해내며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북으로 간 스파이 흑금성으로 분한 황정민과 북한 최고위층 인물 리명운 역의 이성민은 치열한 심리전과 동시에 뭉클한 감동까지 선사하며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남한의 안기부 실장 최학성 역을 맡은 조진웅과 북한 보위부 요원 정무택으로 변신한 주지훈도 호연을 펼친다.

‘공작’에서 열연을 펼친 조진웅(왼쪽)과 주지훈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형 웰메이드 첩보영화의 탄생이다. 화려한 액션신 없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영화 곳곳 예상치 못한 웃음 코드로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더니 말미에는 뭉클한 감동과 깊은 여운을 남긴다. 첩보 장르 고유의 재미와 함께 남과 북의 다채로운 인물들을 통해 분단국가의 드라마틱한 이면을 생생하게 전달한 윤종빈 감독은 역시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러닝타임 137분. 오는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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