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황정민이 영화 ‘공작’으로 돌아왔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연기 인생 24년 만에 한계에 부딪혔다. 연습을 아무리 해도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바닥을 쳤고, 이것 밖에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휴식을 택했다. 나를 되돌아보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초심을 찾기 위해 배우의 시작이었던 무대에도 다시 올랐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더니 다시 해낼 힘이 생겼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더 잘 해낼 자신감이 넘친다. 배우 황정민이 영화 ‘공작’으로 배우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았다.

‘공작’(감독 윤종빈)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영화다.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가 주도한 이른바 북풍 공작 중 하나인 ‘흑금성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황정민은 북으로 간 스파이 암호명 흑금성 박석영 역을 맡았다. 신분을 위장한 채 적진의 한가운데로 잠입하고, 그들의 신뢰를 얻어 정보를 캐내는 인물이다. 황정민은 평범한 사업가의 서글서글함과 치밀한 스파이의 두 얼굴을 오가며 입체적인 연기로 극을 이끈다.

‘공작’은 여느 첩보 영화와 궤를 달리한다. 현란한 액션, 숨 가쁜 추격전, 화려한 볼거리 대신 치열한 심리전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한 북측의 집요한 의심과 이를 피해 가기 위한 흑금성의 페이크가 쉼 없이 교차한다. 이에 배우들은 오로지 대사만으로 정보와 인물의 숨겨진 속내, 또 첩보 영화의 긴장감까지 전달해야만 했다.

수많은 작품을 통해 대중과 만나 온 황정민도 ‘공작’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그는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공작’을 통해 부딪힌 한계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등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황정민이 ‘공작’에서 북으로 간 스파이 흑금성으로 분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남과 북의 이야기를 다루는 탓에 정치적인 시선을 빼놓을 수 없는 영화다. 조심스러울 것 같은데.
“촬영할 때는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았다.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좁게 시선을 잡아서 시작했다. 나라와 사상, 신념은 다르지만 두 남자의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더 넓게 보면 남과 북의 화합이 될 수 있고 또 하나는 정치적일 수 있는데 그거는 관객들의 몫이다. 분명히 정치적 얘기가 나올 수 있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도 했는데 너무 어렵게 접근하지 말고 정공법으로 가는 게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솔직하게 하는 게 제일 정확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촬영을 하면서도 걱정했지만 그러면서도 ‘우리가 아니면 누가해’라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것도 없지 않아 있다.”

-‘공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광대라 재밌는 얘기를 들으면 나만 알고 있는 걸 못참겠다. 다 알려주고 싶은 게 광대의 기질인 것 같다. 처음 이 사실(흑금성 사건)을 알았고 ‘설마 이런 일이 있었다고? 헐 대박’ 하면서 놀랐다. 분명히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 나랑 똑같은 반응일 거다. 그게 첫 시작이었고 제일 큰 이유였다.

-실존 인물을 연기했다. 실제와 얼마나 비슷한가.
“거의 비슷한데 애초에 1인 2역으로 마음을 먹고 했다. 그 부분에서는 영화적인 상상이 들어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라서 제약이 있었다. 또 기본적으로 첩보물이라고 상상했던 종류의 영화들이 있는데 ‘공작’은 결이 달라서 (영화적 상상이)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 고민이 있었다. 그저 암호명을 가진 사람과 안기부 직원일 때의 차이를 두기 위해 사투리를 선택한 게 다다. 실화가 아니었으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 많았을 거다. 첩보물이라고 해서 재밌겠다고 시작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

‘공작’ 황정민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오로지 대사로 긴장감을 끌고 가야 했다. 많은 대사 탓에 ‘구강액션’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그 피로감은 어떻게 이겨냈나.
“이겨내지 못했다. 윤종빈 감독이 모든 대사 신이 액션 같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이내믹하고 긴장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게 말은 쉽다. 막상해보면 너무 어려운 거다.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큰일 나겠다 하면서 바닥을 쳤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배우들에게 털어놓게 됐는데 나만 힘든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서로 도와주면서 했다. 진짜 잘 짜서 호흡을 맞췄더니 긴장감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감독의 편집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관객들이 많은 기대를 하고 올 것 같다.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온 황정민 배우와 새로운 첩보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것 같은데.
“궁금하다. 관객들이 어떤 반응일지. 보고 나서 내가 처음에 사건 얘기를 들었을 때 느낀 감정들이 그대로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액션 장면 없어도 긴장감 있네’라는 마음만 있어도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관객들은 실화를 바탕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황정민을 좋아한다.(웃음)”

-황정민이 나오는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들이 있는 반면 또 비슷한 영화를 찍었나에 대한 시선도 있다.
“그런 분들은 그렇게 많이 없다. 천 명 중에 한 20명 정도가 그런 분이고 내 영화를 너무 기다리는 분들이 980명 있다. 나는 980명이 더 좋고 사랑스럽다. 이분들을 더 신경 쓰고 싶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관객들한테 책을 선물한다는 느낌으로 한다. 책을 선물하는 건 어렵다. 읽는데 너무 재밌어서 책장 넘기기 아까운 책들이 있다. 나는 그런 책을 고른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그 이야기 안에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찾고 있다.”

황정민이 ‘공작’ 촬영 비하인드스토리를 공개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윤종빈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대단히 똑똑하고 집요한 사람이다. 예민한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예민하고 집요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도 모르게 변화되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레이션이 많은데 7월까지 계속 녹음을 했다. 솔직히 스태프들이 싫어했다. 나랑 감독만 좋아했다. 감독은 자꾸 다시 하니까 내 눈치를 보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만큼 집요함이 있는 거다. 하고 나니 결과물이 좋았다. 나쁜 걸 시키는 게 아니고 좋은 걸 하기 위해서, 열심히 한 것이기 때문에 좋았다.”

-경력이 적은 배우가 아닌데,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것도 대단하다.
“‘공작’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작품이다. 허투루 할 수 없는 거다. 개봉하고 나면 다시 찍을 수도 없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또 하나는 감독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주인공의 목적은 감독님을 믿고 따라서 힘을 실어줘야지 못한다고 하면 주눅이 들어서 더 불편해질 수 있다. 그거를 왔다갔다 잘 해야 한다. 일부러 괜찮다, 할 수 있다고 한다. 배우가 열심히 하니 따라오게 되는 게 분명히 있는 거다.”

-‘공작’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다시 바닥을 치면서 나를 다시 보게 됐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하면서 당연히 열심히 했지만 그 방법 자체가 관성에 쌓여서 했다는 것을 ‘공작’을 통해 알게 됐다. 잘 쉬고 연극하면서 또다시 처음 시작하는 느낌으로 하게 됐고,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는 굉장히 큰 작품이다.”

- 지난 3월 연극 ‘리차드 3세’로 무대에 올랐다. 원캐스트로 약 한 달간의 일정을 소화했는데, 출연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연기자로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나. 
“‘공작’ 때문이었다. 촬영을 하면서 ‘내가 정말 모자라구나, 다시 처음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블 캐스팅이 아니고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는 목적도 있었고 몸 관리도 잘 해야 했다. 다행스러웠던 게 관객들이 좋아해줬다. 커튼 콜 할 때 많은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주는데 그때 오는 감동이 컸다. 어떤 일을 할 때 진심으로 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온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됐다. 그래서 연극 끝난 지금 너무 상태가 좋다. 늘 얼굴이 빨간 상태이긴 하지만, 내 몸 속은 하얗다. 백지상태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차기작인 ‘귀환’이 기대된다.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작’이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나.
“재밌는 영화. 대박. 강추. 엄지 척. 그런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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