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성민이 영화 ‘공작’(감독 윤종빈)을 통해 또 하나의 인생캐릭터를 추가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날카로운 인상, 무뚝뚝한 말투, 속을 알 수 없는 표정… 그러나 누구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로 마음을 흔드는 인물. 배우 이성민이 영화 ‘공작’(감독 윤종빈)을 통해 또 하나의 인생캐릭터를 추가했다. 그리고 이토록 ‘값진 결실’을 맺기까지는 그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

8일 개봉한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영화다.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가 주도한 이른바 북풍 공작 중 하나인 ‘흑금성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앞서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되며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극중 이성민은 북의 외화벌이를 책임지고 있는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 역을 맡았다. 냉철한 판단력과 리더십을 겸비한 채 무엇이 조국을 위한 길인지 깊이 고민하는 인물이다. 이성민은 실감 나는 분장과 의상뿐만 아니라 북의 사투리와 대화법을 익히는 등 북의 최고위층 인사의 모습을 자신만의 연기와 정서로 완성해 호평을 받고 있다.

이성민이 ‘공작’ 촬영을 하면서 겪은 고충을 털어놨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지만 정작 본인은 “처절하게 반성했다”며 촬영 현장에서 겪은 고충을 털어놨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이성민은 “이렇게 알량한 재주로 먹고살았다는 사실이 너무 창피했다”며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면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7년 동안 67개의 작품에 출연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종횡무진 활약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했다. 맡은 역할마다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이면서 연기력으로 혹평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런 그가 이토록 힘들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이 영화가 유독 힘들었던 점은 내가 연기해왔던 관성대로 가지 않고 날 고정시켜놓고 하니까 발현이 안 되는 거였어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작은 숨도 쉬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하고 해야 했어요. 긴장감을 계속 유지해야 했고요. 차라리 치고받고, 액션 하거나 대화를 하면 쉬웠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어요.”

눈빛 하나, 손짓 하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대본에 적힌 대로, 계산한 대로 정해진 틀 안에서 연기해야 했다. 답답했지만, 돌이켜보니 그것이 연기의 기본이었다. 오만함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연기를 편하게 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했고, 많이 설계하고 계산해서 해야 하는 연기가 많았어요. 어릴 때 대본대로 하는 그런 연기였어요. 많은 생각을 했어요. 어릴 때 이렇게 했던 걸 왜 그동안 안 하고 있었나. 나이가 들면서 대본에 충실하지 않기 시작하고, (연기는) 즉흥으로 하는 거라는 오만한 생각을 갖고 있을 무렵에 이 작품을 만나니까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 것 같아요.

‘공작’에서 북한의 최고위층 리명운을 연기한 이성민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본인의 평가가 어떻든 이성민은 ‘공작’에서 흠잡을 곳 없는 활약을 펼쳐냈다. 리명운 그 자체로 분한 그는 치열한 심리전으로 긴장감을 선사하더니 따뜻한 인간미로 뭉클한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외모 변신도 좋았다.

“대본에 있는 인물을 분석하고 외형이나 그런 부분들은 윤종빈 감독과 많이 상의를 하면서 하나씩 결정했어요. 북한의 사실적인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려고 했었고, 감독이 안경을 쓰면 좋겠다고 해서 썼죠. 색 선택하는 것도 오래 걸렸어요. 외형은 그렇게 꾸몄죠. 흑금성 대사에서 리명운은 강인해보이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명확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흑금성과의 만남에서 김장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완성된 영화에서 본 리명운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예민하고 신중하고 겁도 많고, 영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흑금성이 굉장히 남성적이라면 리명운은 여성적인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자신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박하지만 작품 자체에 대한 자신감은 넘친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결과물은 뿌듯할 만큼 만족스럽다.

이성민이 ‘공작’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황정민과 조진웅, 주지훈의 연기력에 찬사를 보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칸에서 보고 이번 시사회까지 두 번을 봤는데, 칸 보다 훨씬 편하게 잘 봤어요. 칸에서 자막도 세 줄이나 지나가고 객석 반응도 신경 쓰였어요. 어떤 리액션도 없던 기억이 나요. ‘이해 못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는 객석에서 웃기도 하고 그런 걸 보면서 ‘역시 한국 영화는 한국 사람이 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칸에서의 혼란스러웠던 점들이 없어서 굉장히 만족했고 개인적으로 힘든 촬영이었는데 좋게 만들어줘서 대만족해요.”

‘공작’은 화려한 액션신 없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하며 한국형 웰메이드 첩보영화의 탄생을 알렸다. 첩보 장르 고유의 재미와 함께 남과 북의 다채로운 인물들을 통해 분단국가의 드라마틱한 이면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빈틈없이 전개된다.

특히 많은 대사로 치열한 심리전을 펼치며 ‘구강 액션’을 선보인 배우들의 열연은 ‘공작’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이성민 외에도 황정민(박석영 역)·조진웅(최학성 역)·주지훈(정무택 역)이 제 몫, 그 이상을 해내며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이성민도 이 점을 ‘공작’의 가장 큰 미덕으로 꼽았다.

“감히 말씀드리는데 배우들 정말 잘합니다. 칸에서는 내 캐릭터만 봤는데 서울 와서 다른 배우들도 보니 정말 잘해요. 그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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