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억 희망연대 노조 국장

‘세류성해(細流成海).’ 가는 물줄기가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힘이 모이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미와도 맥이 닿아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이를 경험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것은 거대 권력도 아니고 정치적인 어젠다도 아니었다. ‘국민주권’을 위해 행동했던 ‘시민들의 힘’이었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대한민국 변화를 이끄는 중심, ‘시민운동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제언을 경청해본다. [편집자주]

 

김진억 희망연대 노조 국장은 “대안적 노조운동은 지역사회와의 연대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독일은 초등학교에서 모의 노사교섭을 실시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노동권과 노사관계법 등을 습득하는 등 노동자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친다. 독일의 ‘노동교육’은 단순히 적성에 맞는 진로모색이나 직업의 다양성 정도만 다루는 한국의 ‘직업교육’과는 내용도, 목적도 다르다. 독일 외에도 프랑스 등 노동을 가르치는 국가들은 노사갈등이 아닌 공공의 이익, 즉 상생의 가치에 초점을 둔 노동교육을 실시한다.

한국은 어떨까. 중등교육을 마칠 때까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 ‘시장과 자본’, ‘경쟁을 통한 성장’ 등이다. 이렇게 ‘고전 경제학’을 열심히 배우고 나면 사회에 나가서는 대부분 노동을 한다. 노동자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은 생략된 채 말이다. 극심한 노사갈등, 대중에게 외면 받는 노동조합 활동은 노동이 빠진 교육에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달랐지만 청소년들에게 노동의 가치를 교육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희망연대 노동조합이다.

2009년 설립된 희망연대 노조는 작업장 중심의 투쟁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운동을 모색하기 위한 여러 실험들을 하고 있다. <시사위크>는 김진억 희망연대 노조 국장을 만나 새로운 노동운동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대안적 노조운동은 지역사회와의 연대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이뤄지는 법이니깐”이라고 말했다.

김진억 국장은 국가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외면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또한 이는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 “복지 사각지대, 지역사회가 해결할 수 있어”

“투쟁이라고 하지만 진짜 투쟁이 있었던가? 투쟁 자체가 어려운 현실이다 보니 언제가 부터 투쟁이 목적이 돼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단체협상과 작업장에 갇힌 투쟁을 넘어 새로운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김진억 국장은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2009년 희망연대 노조를 설립했다. 조직을 준비할 당시 케이블 노동자들이 눈에 띄었다. 주민들과 직접 만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후 비슷한 업종으로 조직 규모를 키우고 비정규직 조직도 갖추게 됐다. 처음 시작했던 지역연대활동은 취약 계층 아동청소년 사업이었다. 비슷한 활동을 하는 지역 단체들과의 연대를 위해 연대기금을 조성하고, 아동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노동교육을 시작했다.

김 국장은 “아이들이 올바른, 건강한 노동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노동인권 교육도 학부모들에게 반응이 좋았다”면서 “물론 이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국가 정책이나 복지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공백을 외면하지 말고 지역사회와 함께 메꾸자는 것이 우리 활동의 취지다”라고 설명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문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지역 복지사업도 워낙 다양하다보니 노동조합에서 전부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2013년 주민들과 함께 사회문화나눔연대라는 복지법인을 만들었다. 구성원들은 중장년 층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다만 고민거리도 있다. 지역 내 청년 노동자 조직을 꾸리는 것이다.

그는 “청년 조직율이 매우 낮은 상황인데, 현재 서울 성북과 강북 지역에서 청년 노조를 위한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면서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나름 지역에서 연대활동을 하면서 노조와 지역 간의 신뢰가 형성됐기 때문에 금방 조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희망연대 노조는 노동의제뿐만 아니라 성평등, 생태환경, 사회공공성 등 보편적 가치와 권리를 실현하는 운동을 지향하고 있다. 그만큼 장기적인 프로젝트지만 긍정적 효과에 대한 확신도 크다. 희망연대 활동이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학교에서 받지 못하는 노동교육을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노동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는 소비자 운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희망연대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역 내 취약 계층 주민들의 환경 개선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희망연대 노동조합>

김 국장은 “어떤 기업이 문제가 있어도 소비자들이 나서기가 쉽지가 않다. 그 기업의 상품을 불매하는 것이 자신에게 불편함을 초래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지역 네트워크가 발동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연대의 일환으로 소비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주민들이 늘어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임금인상 아닌 행복한 삶을 위한 노동운동”

대안적 노동운동, 왜 지역사회연대일까. 기존의 노조 활동은 작업장 내에서 임단협 체결을 위한 활동에 머물러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외면을 받기 일쑤다. 시민사회와의 교류와 이해관계 없이 연대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이는 노동조합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게 김진억 국장의 설명이다. 어릴 때부터 공생보다는 경쟁에 익숙한 대다수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성인이 돼서도 더 많은 연봉을, 자식에게 더 나은 교육을, 더 편한 노후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김 국장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탈락하기 않기 위해 서로 딛고 올라서는 삶은 노동해방이 아닌 노동종속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며 “이 같은 획일화 된 삶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 심화와 청년실업, 성차별 등의 결과만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끔 조합원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술 먹고 스트레스 풀고, 집에 가서 자는 게 대부분 노동자들의 삶”이라며 “임금 인상만을 추구하는 삶은 비교경쟁만 낳을 뿐이다. 사람은 나눌 때 더 행복하다고 하지 않은가. 노동운동도 행복한 삶을 위한 운동으로 가야한다”고 조언했다.

김진억 국장은 “임금 인상만을 추구하는 삶은 비교경쟁만 낳을 뿐이다. 이제 노동운동도 행복한 삶을 위한 운동으로 가야한다”고 조언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이를 위해 김 국장은 기존의 노동조합이 대공장·정규직·남성·조직노동자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중소영세·비정규·여성·미조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같은 삶은 지역사회와의 연대에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안적 노조운동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노동자와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의료연대와 교육과 보육, 간병 등 사회서비스 제공 생활협동조합 설립 등이 각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다.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지만 홍보는 하지 않습니다. 희망연대노조 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렇게 할 수도 없으니까요. 우리는 하나의 작은 모델일 뿐이죠. 이것이 다른 산별노조로 확산되고, 다른 지역으로 환산되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아직은 작고 미비하지만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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