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요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나? 111년 기상관측 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라니 나이 든 친구의 건강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11일까지 모두 3,800여 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서 47명이 숨졌다고 하더군. 농가의 피해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3일 오전 9시 현재 여의도 면적의 2.8배인 2335㏊의 과수원과 채소밭이 일소 또는 고사 피해를 당했다네. 체온 조절이 어려워 숨진 닭과 돼지도 540만 마리가 넘었고. 이달 하순까지 33도가 넘는 더위가 계속된다는데… 폭염 피해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야.

이번에 기록적인 폭염 재난을 겪으면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둔한 존재인가를 다시 확인하게 있네. 먼저 이선관 시인이 2004년 연말에 있었던 서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 후에 썼던 <동물들의 시체는 하나도 보이지 않네요> 라는 시를 읽고 이야기하세.

“그것 보아라/ 누가 인간을/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을 넘어/ 제 육의 감각인 육감을 가진/ 진화하는 문명인이라 하였는가/ 을유년 정초에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과 해일을/ 한 달 전부터 감지한 그 지역 동물들/ 그 동물들의 시체가 하나라도 보이던가/ 인간의 욕망 때문에 육감을 상실한 / 아, 퇴행하는 인간 진화의 후진이여”

동물들은 지진이 일어날 것을 미리 감지하고 모두 피했는데, 우리 인간만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약 13만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를 겪었다는 거야. 인간의 욕망이 육감을 상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 재해에 속수무책이었다는 게 시인의 설명일세. 이런 걸 보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주장은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낸 오만한 생각일 뿐이야.

불교에서는 사람에게 독이 되는 세 가지 것들을 '탐진치(貪瞋癡)'라고 부르네. 욕심, 화냄, 어리석음이 바로 그 세 가지야.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욕심이 많고 어리석고 우둔한 족속인가를 새삼 다시 확인하게 되었네. 지난 300여 년 동안 서구 근대문명과 자본주의 체제가 조작하고 확대시켜온 ‘가짜 욕망’을 마치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붙들고 있으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기후변화가 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욕망을 줄이는 대신 확대하고 충족시키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우리 인간이 참 어리석고 우둔한 동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지.

많은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마치 인간의 본성에 가장 적합한 정치경제체제인 것처럼 말하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지금 이 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야.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조작하고 확대해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만든 이데올로기가 마치 진리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을 뿐이지. 그런 이데올로기의 세례를 받은 많은 대중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게 인간의 생득적 권리인 양 끊임없이 소비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하지만 자본주의체제에 의해 확대되고 조작된 욕망은 어떤 소비로도 충족되지 않아. 끝없는 소비만이 지속될 뿐이야. 그래서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일시적인 욕망 충족은 있을지 몰라도 ‘이제 그만’이라고 손사래를 칠 수 있는 만족 상태에 도달하기는 어려워. 일시적인 욕망 충족에서 오는 행복감도 한 순간의 쾌락일 수밖에 없고.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도 국민들의 욕구 충족 요구에는 별 수 없는가 보네. 경제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고 재벌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고 투자를 유인하는 성장 우선 쪽으로 정책 전환을 모색하는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네. 촛불혁명 정신을 잇겠다는 정부의 대통령과 장관이 국정논단의 주범들 중 하나로 아직 재판을 받고 있는 재벌 총수를 만나 투자를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담할 수밖에. 그래서 지난달에는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을 촉구하는 323명의 지식인 선언까지 나왔지만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네. 점점 촛불 민심과 어긋난 정책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도 다시 참여정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어.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줄고 정의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그런 염려 때문일 걸세.

언제쯤 우리는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의 욕구 수준을 낮추는 정책들을 과감하게 펼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좀 불편하게 사는 게 지구를 살리고 후손들의 미래를 위한 삶의 방식이라고 자신 있게 설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쯤 정부가 나서서 폭염으로 고생하지 말고 에어컨 마음껏 켜라고 전기료를 깎아주는 대신, 에어컨을 틀지 않는 게 함께 사는 모든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의 도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까? 화석 연료를 많이 사용해서 생긴 지구온난화의 고통을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에어컨으로 견디면 지구온난화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왜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가? 더 이상 우리들의 생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제 성장은 기후변화를 더 악화시킨다는 걸 왜 국민들에게 당당하게 설명하지 못하는가?

이게 다 우리들의 조작된 욕망 때문일세. 지금 이대로 가면 이 지구에서 인류가 100년도 살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도 성장만을 고집하는 것도 결국 우리,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본의 욕망 때문이야. 이 지구에서 사는 생명체들 중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건 인간뿐이야.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구를 더 이상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있으니… 우리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고 우둔한 존재인가?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