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작’이 호평 속 꾸준한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액션 없이도 긴장감을 선사하는 탄탄한 스토리와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열연, 윤종빈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춘 영화 ‘공작’이 최근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꾸준한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형 웰메이드 첩보영화의 탄생이라는 평가받고 있는 ‘공작’.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영화다.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가 주도한 이른바 북풍 공작 중 하나인 ‘흑금성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공작’에서 흑금성 박석영으로 분한 황정민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황정민이 기자들에게 고마워한 이유

‘공작’에서 흑금성 박석영 역을 맡은 황정민은 국내 언론시사회가 끝난 후 기자들을 향해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기자들 덕에 ‘공작’이 더 긴장감 있게 완성됐다는 것. 사연은 이랬다.

‘공작’은 국내 개봉에 앞서 지난 5월 개최된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당시 영화 상영 후 기립박수가 쏟아지며 ‘웰메이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국내 취재진 사이에서 초반 전개가 다소 늘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공개된 국내 버전 ‘공작’은 칸 버전과 달리 러닝타임 4분이 줄었고, 황정민은 “더 나은 결과물이 나왔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황정민은 “칸 상영 후 ‘초반이 지루하다, 길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라면서 “솔직히 알고는 있었는데 배우가 감독한테 얘기하기 애매했다. 그런데 기자들이 그런 얘기를 해주니 감독이 다시 편집을 한 것 같다. 크게 잘라낸 것도 없는데 되게 스마트하게 잘 나와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사자 윤종빈 감독은 칸 상영 후 피드백으로 재편집을 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공작’에서 리명운 역을 연기한 이성민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성민 딸, ‘공작’ 흥행 예감했다?

배우 이성민은 고등학교 2학년인 딸에게 평소 자신이 출연하는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고 전했다. ‘지루하다, 재미없다, 이건 왜 했냐’ 등 솔직하고 냉정한 평가로 지적도 서슴지 않는다고. 그러나 ‘공작’은 달랐다. 이성민에 따르면 시사회를 통해 ‘공작’을 접한 이성민 딸은 “너무 재밌었다”며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군도’인데 그 다음으로 재밌다”고 극찬했다.

이성민은 믿지 못했다고 한다. 1990년대 있었던 실화를 다룬 탓에 10대 청소년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성민 딸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재밌었다”면서 “그래서 친구들한테 이해 못할 여지가 있으니 부모님이랑 같이 보라고 했다”며 팁까지 전수했다고 덧붙여 이성민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성민은 “오히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젊은 친구들은 영화 자체의 이야기만 따라가면서 보기 때문에 더 쉽고 재밌게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김정일 별장을 사실감 있게 재현한 ‘공작’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김정일, 살아 돌아온 줄”

‘공작’에는 그간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90년대 북한의 모습이 완벽하게 재현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윤종빈 감독과 제작진은 철저한 자료조사와 고증 과정을 통해 90년대 북한의 시대와 공간의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김정일(기주봉 분)이다. 김정일의 리얼한 모습은 특수분장으로 완성했다. 할리우드 영화 ‘나는 전설이다’, ‘맨인블랙 3’, ‘블랙스완’ 등의 특수 분장을 맡은 프로스테틱 르네상스(Prosthetic Renaissance)와 작업했다. 무려 8개월 동안 한국과 뉴욕을 오가는 수정작업이 진행됐다.

매 촬영마다 6시간 정도를 투자해 분장했지만 접착력의 문제로 촬영은 10시간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완성된 분장에 돋보기안경을 끼고, 김정일과 가장 닮아 보이는 각도와 자세를 찾는 등 심혈을 기울여 김정일의 모습을 완벽히 재현할 수 있었다.

극중 김정일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북한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 역을 연기한 이성민도 리얼한 분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성민은 “김정일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서 “실제로 만난 느낌도 들고 너무 놀라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 (기주봉이) 선배라서 장난은 못 치고 계속 쳐다만 봤다”며 웃었다.

‘공작’에서 정무택 역을 맡은 주지훈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김정일 앞에서도 당당했던 주지훈의 패기

‘대배우’ 황정민과 이성민을 한없이 작아지게 만든 촬영이 있었다. 박석영과 리명운이 김정일과 대면하는 신이다. 두 사람은 모두 “정말 죽을 맛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일이 살아 돌아온 듯한 리얼한 분장과 거대한 벽화와 넓은 공간을 활용해 제작된 김정일 별장 세트의 광활함에 두 배우는 그야말로 압도당했다. 특히 김정일과 눈을 맞추지 않고 부동자세로 허공을 바라보며 엄청난 양의 대사를 쏟아내야 하는 탓에 황정민과 이성민은 수많은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NG를 냈다.

그렇게 힘들게 첫날 촬영을 마친 황정민과 이성민은 다음날 같은 세트장 촬영에 합류한 주지훈(정무택 역)의 패기에 할 말을 잃었다. 황정민은 촬영을 앞둔 주지훈에게 “너 조심해라. 여기 너무 이상하다. 잘 해라”라며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시켰다. 그러나 주지훈은 당당히 김정일의 눈을 보며 대사를 쳤고 황정민과 이성민을 버럭 하게 만들었다. 이성민은 “(주)지훈이가 김정일의 눈을 보지 않고 연기하는 순간, 버벅거리기 시작했다”고 폭로했다.

‘공작’에 카메오로 출연한 가수 이효리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효리’ 역에 이효리 캐스팅… 자필 편지로 설득한 윤종빈 감독

‘공작’에는 반가운 얼굴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톱가수 이효리가 그 주인공. 이효리는 ‘이효리’ 역을 맡아 영화 말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2005년 실제 있었던 남한 가수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함께 찍은 한 휴대폰 광고 촬영장을 재구성한 신이다. 윤종빈 감독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당시 휴대폰 광고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이효리를 ‘이효리’ 역에 캐스팅했다.

하지만 이효리는 실제 본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부담감을 느끼고 출연을 거절했다. 윤 감독은 당사자가 나오지 않으면 스토리의 설득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 자필 편지로 그를 설득했다. 윤 감독의 진심 어린 마음에 이효리도 마음을 돌렸다는 후문. 이효리는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윤종빈 감독의 거듭된 제안에 마음이 흔들렸다”면서 “13년 전 당시 설레면서 긴장됐던 순간을 떠올리며 촬영에 임했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참고로 제작진은 조명애 닮은꼴을 찾기 위해 6개월가량을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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