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 항소심 선고가 열리는 서울법원청사 인근에서 20~30명의 지지자들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조나리 기자>

[시사위크|서초=조나리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항소심 선고가 열린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법원이 오열과 성토의 장이 됐다. 예상했던 것보다 적은 수의 지지자들이 모였지만, 선고가 나오자 조용했던 법원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한 지지자는 가슴 통증을 호소,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기다렸던 지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사법부가 ‘보복재판’을 하고 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왼쪽)최순실 씨 변호를 맡고 있는 이경재 변호사가 24일 오전 9시 50분 법원에 출석했다. (오른쪽)출입이 통제된 법원 입구. <조나리 기자>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이 시작되기 10분전만 해도 법원 근처는 조용했다. 20~30명의 박 전 지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박 전 대통령의 선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법원을 찾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인사를 나누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 전 도시자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을 방청할 예정이었지만, 방청권이 없어 입장할 수 없었다. 이날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이 열리는 서울법원청사 312호 재판정과 2층 출입구 양쪽에 벽을 설치하고 방청권이 없는 일반인의 건물 출입을 통제했다. 최순실 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경재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재판 시작 10분 전 법원에 도착했다. 김 전 지사와 인사를 나눈 이 변호사는 살짝 긴장한 얼굴로 방호원들의 안내를 받고 법원으로 들어갔다.

주옥순(왼쪽) 엄마부대 대표가 인터넷방송 진행을 하며 김문수(오른쪽) 전 경기도지사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김 전 도지사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의 무죄를 주장했다. <조나리 기자>

김 전 도지사는 항소심 선고 결과를 어떻게 예측 하냐는 질문에 “당연히 무죄다. 박 전 대통령이 무슨 죄를 지었냐”면서 “나도 감옥 2년6개월 살고, 재판도 많이 받아왔지만 이번 같은 재판은 본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이 재벌 기업을 협박하기라도 했냐”며 “단순히 응원이나 힘내라는 차원이 아니라 법적으로 무죄를 촉구하러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지지자들은 저마다 선고 결과를 예측하기 바빴다. 대부분의 지지자들은 박 전 대통령이 석방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날 처음으로 법원을 왔다는 한 지지자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가 반토막이 났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비로소 똑바로 됐다”면서 “이제는 판결이 제대로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터넷에서는 활발히 활동했지만 이렇게 현장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누군가 나가겠지’라는 생각으로 지내왔는데 실제 와보니 많이 모이지는 않은 것 같다”면서도 “앞으로 내 남은 인생을 여기에 다 걸 것이다. 나도 공직생활을 했지만 지금 상황은 내가 배워왔던 것들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교적 조용했던 법원 주변은 오전 10시 40분 항소심 선고가 나오자 지지자들의 분노로 휩싸였다. 특히 1심보다 형량이 가중되자 모여 있던 지지자들은 믿기지 않다는 듯 재차 선고 결과를 확인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오열하는 소리와 욕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취재를 나온 기자들에게도 원망을 쏟아냈다. 지지자들의 격한 반응은 한동안 계속됐고, 결국 철수를 요청했던 법원 관계자들과도 작은 충돌을 빚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각각 모여 재판 결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한 지지자는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호미로 구멍을 내면 댐을 무너뜨린다. 난 호미자루 하나 들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조나리 기자>

재판을 방청했던 한 지지자는 오전 11시께 신동욱 공화당 총재의 부축을 받고 법원을 나오기도 했다. 이 지지자는 두통과 가슴통증을 호소하다 신고를 받고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 갔다. 지지자가 구급차로 호송된 후에야 입장을 밝힌 신 총재는 “박 전 대통령이 항소를 포기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형량이 늘어난 것은 매우 유감이다”라며 “특히 벌금이 20억원이나 더 늘어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신 총재는 이어 “이는 마지막까지 먼지까지 털어내겠다는 의지로밖에 볼 수 없다”며 “너무나 잔인한 재판이다”라고 말했다.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재판 결과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오른쪽은 선고 직후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한 지지자를 보살피고 있는 신 총재 모습. <조나리 기자>

법원 관계자들의 철수 요구에도 지지자들은 한동안 법원을 떠나지 못했다. 일부 1인 방송을 진행하는 지지자들은 법원의 상황을 전하며 재판 결과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 지지자는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이 무죄인 것을 다 알고 있다”면서 “언론도 제대로 보도를 하고 있지 않다. 지상파 방송이나 신문보다 인터넷 1인 방송이 훨씬 더 정확하게 보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지자들의 욕설과 고성이 끊이지 않자 결국 법원 관계자들은 마지막 경고를 하며 철수를 요구했다. 오전 11시 30분께 법원을 뜨기 시작한 지지자들은 어느새 뿔뿔이 흩어져 법원을 빠져나갔다.

지난해 3월 10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열렸던 헌법재판소 앞에는 보수단체 회원들 1만여명 이상이 집회를 벌였다. 당시 경찰은 법원청사 주변에 1,500여명의 경력을 배치하고, 가두행진에 대비하기 위해 강남역 등 인근까지 약 3,300여 명을 배치했다. 이날도 경찰은 200여명의 지지자들이 법원청사에 모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적은 수의 지지자들과 10여명의 집회 신고자들만 법원 근처에 있었다.

실제로 이날 법원에는 태극기를 들고 온 지지자들도, 확성기를 들고 온 지지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에 친박 단체들이 과거보다 힘이 빠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법원을 빠져나간 후 법원삼거리 앞에는 10여 명의 집회 신고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부 지지자들은 고성을 지르지도 했지만 대부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조나리 기자>

한편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문석)는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 등을 받는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5년 및 벌금 200억원을 선고했다. 앞서 1심은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원을 선고한 바 있다.

항소심은 1심에서 무죄로 본 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통해 삼성으로부터 받은 16억2,800만원을 뇌물로 판단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승계 작업이 존재했고, 이에 대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묵시적 청탁이 존재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향후 이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항소심 결과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어서 열린 최순실 씨의 항소심 선고는 1심과 같은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벌금 액수는 박 전 대통령과 같이 200억원으로 늘었다. 이에 대해 이경재 변호사는 “앞으로 묵시적 공모가 확대 적용되면 무고한 사람을 많이 만들 것”이라며 “정의롭고 역사적인 판결을 기대했지만 성취하지 못했다”고 재판 결과에 강한 불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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