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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의 ‘문예노트’] 차실에서 잠 못 이루는 친구
하도겸 칼럼니스트

차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팽주에게 “참 잘하신다”고 감사함을 전한다. 보통 고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마음도 건강도 잘 가꿔야 할 중요한 자리이며 역할이다.

다실의 분위기도 좋으면 더 좋겠지만 무엇보다도 물과 다구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너무 좋으면 오히려 부담되겠지만, 보이차를 마실 수 있게 자사차호가 많으면 더 좋다. 대사가 만든 차호면 좋겠지만 생활차호만으로도 이미 행복하다.

같이 하는 사람에게 호감이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막거나 잡는 것 자체가 차만 알고 사람을 모르는 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회의 성격에 따라 달리할 수밖에 없는 시절인연도 있다.

시음에 앞서 스스로 가지고 간 차에 대해 일부러 "좋은 차였는데 저 만나 고생해서 안좋아졌다"고 평가절하한다. 물론 말하기 전에 '차'에게 양해를 구한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아니 섹스앤드더시티에서 강도를 만난 캐리가 자신이 신은 구두만은 빼앗지 말라고 한 것처럼 아주 소중한 신발, 아니 친구인 '차'에게 너의 진면목을 알아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 잠시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겸손함을 벗어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차를 우려내면 대부분은 안 좋은 차라는 말에 걸려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못 먹겠다는 이는 말에 걸린 분이다. 그래도 고맙다는 이는 예절을 갖춘 분이다. 말에 걸리지 않고 맛있다며 잘 마시는 분은 진정한 고수다.

가격과 년도 맛 차탕 긴압 차품 다 좋으면 금상첨화이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이 몇가지 갖추지 못해서 인생에서 성공을 하는 이는 수두룩하다. 까닭에 한가지만 보면 안될 듯하다. 더 안좋아도 부조화속에 조화인지 참으로 맛있고 진기가 좋은 차도 더러 있다. 아니 의외로 많다.

차를 마시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그 빈자리에 따스한 인정을 채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에도 휩쓸리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차맛을 보고 차품을 생각하며 아울러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을 돌아보면 될 따름이다. <하도겸>

남의 차가 아니라 스스로의 차에 대해서만 그나마 가능한 이야기지만, 일부러 먹기 전에 구두약을 바른 것 같다는 식으로 재를 뿌리면 대부분의 차를 아는 마니아들은 선입관과 편견이 작용하며 맛을 보기도 전에 눈을 찡그린다. 일부는 냄새조차 싫어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안좋은 기억들과 가게들과 사람들을 떠올린다.

심지어 "이런 차를 계속 마시면 몸이 안좋아진다"는 말도 감사하게 해준다. 하지만, 차회까지 함께 하는 차는 이미 우리 도반이다. 차회 같은 소중한 모임에 아무나 데려가지 않는다. 까닭에 굳이 속된 말로 '나쁜 차'를 가지고 갈 이유가 없다. 이 모두가 "한밤중에 만난 새끼줄을 독사로 보는 것"과 같은 이치인 듯하다.

차를 마시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그 빈자리에 따스한 인정을 채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에도 휩쓸리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차맛을 보고 차품을 생각하며 아울러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을 돌아보면 될 따름이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할 차를 구하고 내몸으로 받아들일 따름이다.

차회가 끝나면 사람을 알게 된다. 벗을 구한다. 그리고 이미 '내'가 된 차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했어도 몹쓸 말을 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며 편하게 잠잘 수 있게 용서를 구한다. 아무리 먹칠을 해도 천리마를 알아보는 것처럼 친구의 진면목은 사라지지도 않는다.

밤이 깊어지기도 전에 차는 이미 친구를 용서하고 깊은 잠에 들어 있다. 차방의 문을 조심스럽게 닫으며 나도 이제야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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