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공정경제민생본부 발족식 및 대기업 갑질 피해 증언대회 현장

28일 오후 1시30분 서울 여의도 국회본청 정의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대기업 갑질피해 증언대회에 참석한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이 피해자들에 대해 제도개선 약속과 사과의 말을 전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상조 위원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 <조나리 기자>

[시사위크|국회=조나리 기자] 정의당이 주최한 ‘대기업 갑질 피해 증언대회’(이하 증언대회)에 참석한 피해자들이 눈물을 쏟아냈다. 피해자들은 정부(공정위 등)와 법원도 피해를 방치하거나 적절한 구제수단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피해자들에 향해 “이 자리까지 오시게 한 데 대해 다시 한 번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한 대기업은 이날 업체 및 로펌 관계자를 보냈다가 피해자의 고발로 증언대회 직전 쫓겨나기도 했다. 이 피해자는 “발표를 잘 준비해 왔는데 저분들을 여기서 보니까 얼어붙은 기분이다.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두려움을 호소했다.

28일 오후 국회본청 정의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대기업 갑질 피해 증언대회에는 ▲현대중공업의 단가 후려치기 피해를 증언한 이원태 동영코엘스 대표 ▲한익길 조선3사 하도급갑질피해하청업체대책협의회위원장 ▲대우조선해양의 하도급법 위반행위를 증언한 윤범석 YL에너지 대표 ▲현대차 협력사 ‘서연이화’의 단가 후려치기를 증언한 손정우 태광공업 대표 ▲현대차 협력사 ‘명신’으로부터 어음부도, 금형 이원화 강요를 받다가 업체 대표가 목숨을 끊은 가진테크(유족) ▲현대차 협력사 ‘세원’으로부터 금형 강탈 피해를 증언한 주민국 엠케이정공 대표 ▲SK테크엑스로부터 기술탈취 피해를 증언한 황성수 CSA코리아 대표 등이 참석했다.

◇ 자괴감 언급한 공정위... 피해자들 비판에 “죄송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했나 자괴감이 든다’는 말을 한 적 있었는데, 저도 가끔 ‘내가 이러려고 스타트업 만들어서 죽어라 일했나 자괴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황성수 CSA코리아 대표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흡하고 갈 길이 멀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참 이러려고 공무원 했나. 자괴감이 듭니다.” -성경제 공정위 제조하도급과 과장

이날 증언대회에서는 공정위에 대한 날선 비판도 나왔다. SK테크엑스로부터 핵심 정보를 갈취 당하고 일방적으로 계약중단 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황성후 CSA코리아 대표는 “공정위가 자기들이 처리하기 곤란하다며 중재위로 사건을 넘겼다. 처음엔 중재위가 중재를 잘하는 곳이라고 기대했다”면서 “그런데 그렇게 할 거면 중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양측 불러서 입장 듣더니 가라고 하더라. 그리고 다시 공정위로 사건이 넘어갔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정위도 한번이라도 우리를 불러서 얘기를 들어봐야 하는데 서면 한 장 보내고 사건 종결을 선언하더라”며 “그때 이후에는 정부 기관에는 기댈 곳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현대차 협력업체 ‘명신’으로부터 경영압박을 받아온 남창식 가진테크 대표는 지난 5월 자신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남 대표는 아내에게 남긴 유서에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시작한 사업이 15년을 해오면서 힘들고 괴로웠던 날들의 연속이었다”면서 “남들처럼 좋은 옷, 좋은 신발 하나 못 사주고 여행 한 번 못 갔구나.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날 증언대회에 나선 고 남창식 대표의 딸은 “부도 직전 너무 억울해서 아빠에게 공정위에 신고하자고 말했지만, 아빠는 신고해도 소용없다며 만류하셨다”면서 “당장 벼랑 끝에 있는데 신고해봤자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기에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이같은 비판에 성경제 공정위 제조하도급과 과장은 “나름 열심히 해오고, 제도 개선도 이끌었지만 여전히 미흡하고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낀다”면서 “대기업의 갑질을 고발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해 익명 고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도 현장에서 피해 사례들을 발굴해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른쪽)손정우 태광공업 대표가 현대차 협력사인 서연이화에게 갑질 피해를 당했다며 증언하던 중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나리 기자>

◇ “하청업체 사장에서 범법자로 전락... 극단적인 생각도”

“앞으로 거래 계약서 작성할 때 검찰 가서 하십시오. 변호사끼리 작성했다? 아무 소용없습니다. 법정까지 가시지도 마시고, 그냥 부도내시고 살길을 찾으십시오. 법정가지 마십시오. 정말 너무 너무 무섭습니다.”

현대차 협력업체 ‘서연이화’와 하청 계약을 맺었던 손정우 태광공업 전 사장은 28일 오후 국회본청 정의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대기업 갑질 피해 증언대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태광공업은 24년간 서연이화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경영난으로 부도위기에 처하자 50억원에 서연 측에 회사를 매각했다. 그러나 며칠 후 서연 측이 공갈을 당해 계약을 맺었다며 손 전 사장을 공갈죄로 고소, 현재 국민참여재판을 받고 있다.

손 사장은 “24년간 서연이 정해준 납품 단가에 맞춰 거래를 해왔다. 이런 일들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적자를 면할 수 없었다”면서 “결국 빚쟁이로 전락해 최후 수단으로 회사를 팔았는데 이젠 공갈을 저지른 범죄자가 될 처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계약서 작성을 변호사들끼리 했는데 어떤 부분이 공갈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2012년부터 올해까지 비슷한 피해 사례가 15건 이상이다. 제발 중소기업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손 사장은 발언 후 얼굴을 감싸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하청업체 갑질 피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사장’ 또는 ‘대표’에 대한 사회적 인식 때문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윤범석 YL에너지 대표는 “하청업체는 단가 후려치기, 인력운용에 대한 간섭·지시, 저가수주 등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마치 사장이라고 하면 좋은 차 타고 골프나 치러 다니는 사람으로 보더라. 대부분 하청업체 대표님들은 임금체불 범법자이거나 파산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우리들도 작업복 입고 생산현장에서 근로자들과 호흡하는 근로자들의 대표일 뿐”이라며 “불공정 하도급 행위에 대한 강력한 행정조치 및 최고책임자에 대한 형사고발, 피해업체에 대한 신속한 피해보상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당 공정경제민생본부 발족식 및 대기업 하도급 갑질 피해 증언대회에 참석한 추혜선(왼쪽부터) 의원과 심상정 의원, 김종민 공정경제민생본부 부본부장이 간담회 시작 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나리 기자>

한편 정의당은 이날 공정경제민생본부 발족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대기업 갑질 피해증언을 준비할 방침이다. 증언대회를 주최한 추혜선 의원은 “대기업 사건은 관료 집단, 로펌, 사법부가 결탁돼 피해 회복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면서 “이런 구조부터 바꾸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법안들을 만들기 위해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반드시 입법시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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